소홍은 원래 성이 임가요 이름이 홍옥이었는데, 옥자가 임대옥과 보옥의
옥자와 겹쳤기 때문에 소홍으로 불리게 된 것이었다.

소홍은 아직 견습시녀에 불과한 아이였지만, 은근히 야심은 있어 상전인
보옥의 눈에 들어 팔자를 한번 고쳐볼까 하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보옥 주위에는 습인을 비롯하여 사월, 사아와 같은 시녀들이
보옥의 환심을 사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으면서 소홍처럼 보옥에게 새로
접근하는 시녀들에 대해 감시의 눈을 번득이고 있었다.

게다가 추문이니 벽흔 같은 치들도 덩달아 소홍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보옥과 무슨 일이 없었나 꼬치꼬치 따져묻곤 하였다.

소홍은 보옥에게 접근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라 여겨져
가운같은 인물의 마음에나 들어볼까 하고 생각하던 차에 가운이 자기
손목을 잡는 꿈을 꾼 것이었다.

망측한 꿈이라 여겨지면서도 꿈속에서 느꼈던 황홀감이 눈을 뜨고
나서도 한참동안 소홍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어쩌면 불원간에 가운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기도 하였다.

한편 보옥은 찻물 주전자를 뜰어뜨릴 뻔했을때 뒤에서 주전자를
잡아준 소홍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려 밤잠을 설칠 지경이
되었다.

보옥이 소홍에게 앞으로 찻물 따르는 일도 하라고 지시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습인의 허락을 받아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었다.

습인은 소홍이 찻물을 따르는 일을 맡기에는 아직은 이르다고 말할게
뻔했고, 보옥이 고집을 피우다 보면 습인은 보옥과 소홍의 관계를
의심하고 들것이 틀림없었다.

보옥은 습인이 자기 아내나 첩도 아닌데 습인앞에서 눈치를 보게 되는
자신에 대해 어떤때는 부아가 나기도 하였다.

오늘 아침도 바로 그점 때문에 부아가 나고 마음이 우울해져서 보옥은
세수도 하지않고 멍하니 침대에 걸터안아 있었다.

창밖에서는 시녀들이 조잘대며 마당을 비로 쓰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보옥은 혹시 소홍이도 그 시녀들 속에 섞여 마당을 쓸고 있나 하고
창으로 다가가 창문을 열어보았다.

그러나 소홍은 뒤뜰에서 일을 하는지 보이지 않았다.

보옥은 신을 꿰어신고 밖으로 나와 뒤뜰로 가보앗다.

거기 뒤뜰 구석에서 장작더미를 가지런히 정돈하고 있는 시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무성하게 가지를 뻗은 해당화 나무에 가려 그 시녀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보옥이 자리를 옮겨 바라보니 그 시녀가 바로 소홍이 아닌가.

소홍은 흐트러진 장작더미를 다시 쌓고 손으로 다독거리다 말고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허리를 펴고 일어나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