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련이 응천부로 와 우촌과 교행 앞에 서게 되자, 교행이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하고 달려나가 영련을 와락 껴안았다.

"영련 아씨, 이게 얼마 만이에요? 우리는 죽은줄 알았다오"

교행은 먼저 영련의 두 눈썹 사이를 살펴보았다.

쌀알 만한 붉은 반점이 거기에 있었다.

"맞아요. 영련 아씨가 틀림없어요.

여기 이 붉은 반점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거든요"

교행이 우촌과 영련을 번갈아 바라보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우촌이 뚜쟁이를 잡아와서 문초할 때도 뚜쟁이가 영련의 양미간에
나 있는 작은 붉은 반점에 대하여 말하며 그 아이가 진사은 선생의
딸이라는 것까지 실토하였던 것이었다.

그 때 우촌이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던가.

"영련 아씨, 저를 기억하시겠어요? 교행이에요.

늘 영련 아씨를 업고 다녔잖아요.

영련 아씨가 없어진 그 날도 내가 업고 나갔으면 아무 일이 없었을
텐데"

교행의 두 눈에는 굵은 눈물 방울이 맺혔다.

영련은 교행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련 아씨를 다섯살 때 잃어버리고 벌써 팔년이 지났으니 영련
아씨가 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죠.

부사 나리도 영련 아씨댁에 자주 놀러왔는데 지금은 기억나지
않겠지요"

영련이 우촌을 올려다보고는 역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련이라는 이름은 기억나세요?"

지금은 뚜쟁이가 지어준 옥명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영련이 어릴적 이름이 기억날 리가 없었다.

영련이 기억나는 것은 아버지 진사은이 집뜰에서 대나무와 각종
꽃들을 키우던 일들이 고작이었다.

영련은 우촌의 집으로 인도되어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그동안 겪어온
일들을 밤새도록 눈물로 이야기하였다.
뚜쟁이는 영련을 유괴하여 멀리 소주와 항주 지역으로 달아나, 비싼
값을 받고 팔아먹을 만한 나이에 이르기까지 온갖 잡일들을 시키며
키웠던 것이었다.

뚜쟁이는 영련의 몸값을 생각해서 그녀의 몸을 범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몸을 노리개감으로 가지고 놀기 일쑤였다.

심지어는 영련에게 손으로 자기 옥경을 만져달라고 요구하는 때도
있었다.

이런 치욕적인 일들을 겪으면서도 영련은 살아남기 위하여 뚜쟁이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친아버지라고 부르며 그에게 매여 지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얼마나 뚜쟁이에게 매를 맞아가며 자랐는지 지금도 군데군데 멍들이
들어 있기도 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