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문민정부는 적어도 경제부문에서는 대단히 무거운 짐을 지고
출발했다.

한 세대에 걸쳐 관주도 성장을 뒷받침 해주던 제도적 골격과 경제의
불균형 구조를 그대로 물려 받았을 뿐만 아니라 93년의 경제상황은
극히 비관적인 것이었다.

일부에서는 이를 단순한 조정국면으로 이해하기도 하였으나 당시의
경제는 "위기"내지는 "총체적 난국"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경제는 다행히 94년 들어서면서 성장세를 회복하였으며,이는 금년에도
이어질 것이 확실하다.

이러한 경제적 성과가 엔고나 유가의 안정과 같은 외적 여건의 소산으로
평가절하시켜 보려는 시각도 없지 않지만,우리는 단기에 성장과
안정이 실현된 데에는 나름대로의 "정책효율성"이 있었음을 인정하는데
인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민정부는 또한 관주도성장전략에서 탈피하여 시장 자율기능의
활성화및 거래질서의 정립을 위한 일련의 개혁을 단행했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차단하고 불로소득의 사회적 병리를 치유하기
위한 금융실명제가 실시되었고,불필요한 거래비용을 제거하고 민간의
창의성을 유도하기 위해 규제완화가 추진되었다.

권위주의 정부하에서 정부의 시장개입을 주도했던 경제부처들은
통폐합 되었으며,경제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위상은
강화되었다.

그동안 사회정의실천에 최대의 질곡으로 작용했던 부동산 투기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부동산 실명제및 효율적 통화가치 방어를
위한 중앙은행의 독립이 제도적으로 보장되게 되면 그동안 부단히
제기되어왔던 일련의 제도개혁의 "패키지"는 마무리되는 셈이다.

이러한 개혁작업들이 문민정부의 대차대조표에서 분명히 대변(대변)
항목에 속하는 것들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상과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경제정책이나 개혁에는
상당한 문제가 없었던 것이 아니며 이러한 문제와 오류가 시정되지
않을 경우 이른바 "세계화"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경쟁력 배양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몇가지 중요한 문제와 향후의 정책기조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책수립에 있어 상황변화에 대한 예측능력이 결여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책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부족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예를 들면 UR협상타결은 하루 앞을 내다보지 못한채 마지막 순간에
부처이기주의까지 가세되어 정책에대한 공신력을 추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충분한 사전준비 없이 OECD가입을 서두르다 멕시코 사태후 아직까지도
이렇다 할 방안이 강구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대적인 사회간접자본 확충계획을 발표하고 있으나 과연 정부에서
기대하는 민자유치가 가능할 것이며 그 부작용은 어떠할 것인가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있는것 같지도 않다.

WTO에 대응한 농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대규모 재원조달 가능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없지 않다.

또한 기회만 있으면 중소기업 활성화를 표방하고 있으나 그 구체적
청사진도 모호하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견지해야할 기본원리로서의 예측가능성,일관성,
신뢰성의 회복은 과거에 그러했듯이 오늘날에도 정책당국의 중요한
좌우명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둘째 앞에서 지적한 일련의 개혁조치들에는 이에 착근시킬수 있는
보완책이 지속적으로 강구되어야 한다.

규제완화는 아직도 불충분한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이 오히려 "리스크 프리미엄"( Risk Premium )만을 올려 놓는
사례도 없지 않다.

환경보호 및 건강 위생등과 관련된 "규제강화" 역시 보다 적극적
관심을 기울여야 할 사안들이다.

이러한 분야에서 선진국수준의 규준( Norm )을 도입 적용하는 것은
비단 환경과 국민의 보건을 보호하기위해 필요할 뿐만아니라,WTO에
따른 전방위 개방시대에 국내 유관산업을 보호할수 있는 합법적
안전판을 제공할 것이다.

금융실명제 또한 96년으로 예정되어 있는 금융자산소득 종합과세를
앞두고 아직도 다양한 보완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명분과 실리간의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조만간 시행을 앞두고 있는
부동산 실명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관주도 성장을 주도해 온 경제부처의 통폐합 역시 그 자체가 작은
정부에 기초한 민간의 자율영역 확대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행정부의 조직개편이전에 존재하던 수많은 법률과 제도및 관행은
그러한 개편에 조응하도록 바뀌어 지지 않는한 부처통폐합은 단순한
표피적 변화를 의미할 뿐이다.

이상에서 제기한 몇가지 문제들은 우리가 단순히 몇가지의 거시지표가
보여주는 경제적 성과나 일부의 여론조사가 나타내는 개혁의 인기에만
안주할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이제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에 접어들고 있다.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지배할 위험이 그만큼 커지게 될것이다.

경제정책의 정치적오염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