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응 < 금융연수원 부원장 >


요즘 X세대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옷차림에 대해서 멸사봉공형 민주주의를
신봉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만약 이들이 신세대가 즐기는 유행이 공익에 유해하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그러한 생각은 우리나라의 현 발전단계에는 맞지 않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 우리는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문턱에 서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선진국의 강력한 경쟁과 견제를 받고 있다.

이를 뛰어 넘어서 선진국대열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국민 각자가 창조력을
마음껏 발휘할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때이다.

이런 때에 공익의 이름으로 창조적 분위기를 가라 앉히는 것은 좋은 일
이라고 볼수 없을 것이다.

공익만을 너무 강조하다 최근 몰락한 동구 공산주의체제의 가장 큰 문제점
은 아무리 복잡하고 큰 집단도 자기를 희생시키는 협동으로 훌륭하게
운영될수 있다고 생각한 점이었다.

즉 개인의 본성을 무시하고 자기희생과 공익에의 충성을 다하라고 한
공산주의의 멸사봉공정신이 도를 지나쳐 개인이 지키고자 하는 최소한의
사익까지도 침범하면서 현실과 당위사이에는 큰 틈이 생기고, 그 사이에
부패가 채워지면서 공산주의는 붕괴의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사익이 인간의 본성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이냐 하는 것은 자기종족보존의
본능, 더 가깝게는 모성애가 어떠한 것이냐로 쉽게 알수 있는 일이다.

인간의 이러한 사익추구본성을 무시한 정책은 조만간 실패하지 않을수 없는
것이며 그러한 예를 우리 주변에서 찾아 본다면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국민경제의 안정을 위한 물가통제등 정책당국자의 공익을 앞세운 지극한
선의에도 불구하고 뜻대로 되지 않고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제도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자기의 개성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입는
것과 같은 행위를 공익을 이유로 규제한다면 그것은 창조적 분위기와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취향에 맞는 일을 할때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고 스스로도
최대의 만족을 느낀다고 한다.

즉 사람들은 자기 뜻대로 할수 있는 자유가 주어질때 가장 창조적이고
가장 능률적이게 된다고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더 근본적 문제가 될수있는 것은 공익, 그것도 많은
사람이 동의하지 않는 공익의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인간은 집단의 이익과 개인의 사익이 합치할때만 집단을 위해 일하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할때에도 이에 의해서 어떤 이익이 자기에게
돌아올 것을 기대한다고 한다.

따라서 집단의 이익을 실현시키려면 이것과 개인의 이익과의 차이를
조화시키기 위한 조정 작업이 필요하며 이것은 당연히 정치인을 포함한
사회지도층의 몫이 될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조정과정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오랜 시간이 걸리느냐도 그 사회
지도층의 능력에 달렸다고 할 것이다.

최근의 행정구역개편과 관련하여 이익집단간의 충돌이 생겼다거나 정당들이
특정집단의 이익을 대표하여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공익과 사익을 일치
시키기 위한 자연스러운 조정과정이며 이것을 멸공봉사형 민주주의라고
매도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로 제기될수 있는 것은 이런 일들을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라고 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개인의 합리적 활동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는 합리적 개인주의와 이에 입각한 과감한 자유화조치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개인의 사익추구를 최대한 보장하면서 개인의 사익과 공익이
일치할수 있게 하는 자유롭고 효과적인 토론의 광장과 공정한 경쟁을
가능케 하는 "게임 룰"을 마련하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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