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은 드디어 7월25일부터 3일간 정상회담을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분단이후 최초로 열리게될 이 정상회담의 의의는 대단히 크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때 그동안 남북한은 탈냉전의 세계사적 대세에
발맞추지 못하고 냉전적 대결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동안 유럽에서는
독일이 민족통일로 냉전질서 탈피의 대세를 주도해 나갔다.

또한 가까운 동북아에서는 중국과 대만마저도 정치적 분단에도 불구하고
실리적인 차원에서 경제협력을 심화하고 민족단위의 중화경제권을 형성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우리민족만이 유일하게 해묵은 냉전의 숙제를 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열리게될 정상회담은 한반도의 냉전 대결구조 해소의
본격적인 계기가 될수 있을 것으로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가 실제로 이루어지리라는 객관적인 증거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북한이 남북한 정상회담에 합의를 하게된 것은 핵문제와 관련하여 제재
국면에 돌입하던 국제적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결국 수동적으로 끌려가기
보다 그 이전에 주도적으로 국면을 전환해 유리하게 협상을 이끌어
나가겠다는 전술적 의도로 해석할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전략적인 차원에서 근본적인 정책및 발상의 전환을
북한이 시도하고 있는지는 알수가 없다.

핵무기 개발과 관련하여 북한의 전략적인 차원의 변화는 군사적 목적으로의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이를 북한에 대한 핵 불사용등 군사적 안전보장,
국제적 고립 탈피, 경제적 난국 타파등을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상태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확인해줄만한 아무런 증거도 보이지
않는다. 대남관계에 있어서의 전략적인 변화란 그동안 북한이 추구해 오던
"반외세"와 남한 내부의 "민주세력"과의 연대라는 기본노선을 버리고 남한을
실질적인 대화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가 전제되어야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여러가지 신뢰구축조치부터
시작하여 종국적으로는 남북한간의 군축까지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북한의 경제정책에 있어서의 근본적인 변화는 "주체"가 아닌, 또는 "주체"
라는 명목상의 이데올로기 아래서라도 어떤 형태로든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에 의한 경제개혁을 시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북한이 개혁을 시도할 의사가 있다면 그것은 최대한으로 점진적인
개혁조치이면서 동시에 북한 당국의 정치적 통제능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최소한인, 그래서 중국식도 러시아식도 아닌 제3의 북한식의 개혁을
원할 것이다.

이러한 핵무기 대남전략 경제개혁등의 문제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고 모두
상호간에 깊숙이 연관되어 있는 문제들이다.

따라서 한 문제에 있어서의 변화는 동시에 다른 문제들에 있어서의 변화를
수반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를 북한이 의도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정부 당국자는
정확히 파악해야만 한다.

만일 남북문제를 현상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북의 진정한 의도는
파악하기 힘들어진다.

그들은 그동안 독특한 언술체계를 구사해왔고 그 때문에 예를 들어 "민주"
"평화" "민족대단결"등의 개념에 대한 해석도 우리와는 달랐다.

따라서 북한의 진정한 의도, 또는 변화의 징후는 10여년간 진행되어온
남북한 접촉의 역사적인 맥락속에서 파악될수 밖에 없다.

남북한 교섭의 역사적 맥락에서 과거와의 비교를 통해서만 이번 정상회담
에 임하는 북한의 태도와 언어가 진정한 변화를 의미하는지 아닌지를 파악
할수 있을 것이며, 이에 대처하여 우리측도 다양한 카드를 준비할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상황의 애매모호한 성격이 이번 정상회담에 임하는 우리 당국자들
에게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

물론 남북한 정상이 만난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말 만나기만 했을뿐 아무것도 구체적인 것을 얻어내지 못한다면
지금 모아지고 이는 기대의 크기 만큼이나 국민들의 실망도 클것이며, 이는
현정부에 정치적인 부담으로 걸리게 되기 때문이다.

북한의 변화가 근본적인 것이 아니고 이번의 남북정상회담을 단순히
전술적인 차원에서 시간벌기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에 대비하여 우리측은
다음의 메시지를 북한에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

즉 북한에 핵무기는 군사적 정치적 수단으로서의 이득보다 비용이 훨씬
커서, 오히려 생존이 아닌 파멸의 길이라는 점이다.

반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한다면 북한의 생존을 위해 남한도 최대한의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어야 한다.

예를들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앞으로의 순탄치만은 않을 협상과정
에서 한국이 어떻게 그들에게 도움이 되어줄수 있을 것인지, 북한경제가
회생하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경제협력을 통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일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줄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노력이 어떻게 남북한 상호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보여주면서 결코 시혜가 아닌 진정한 동반자적 협력의 자세를 견지해야 될
것이다.

결국 북한의 태도변화에 따라 남한은 북한이 그들의 문제를 풀어가는데
장애물이 아니라 진정한 협력자가 될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메시지가 충분히 전달되고 이에따라 북한의 근본적인 태도변화가
촉발되며, 그동안의 남북관계를 대결에서 협력관계로 바꾸는 계기가
마련될수만 있다면 정상들이 만나는 장소가 평양이든 서울이든 그리 큰
문제가 될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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