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각국에서는 지속적인 재정적자로 인해 국채발행량이 끊임없이
불어나고 있는데 대한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국채는 국가가 국민
들에게 진 빚을 의미한다. 유럽연합에 속해 있는 12개국의 경우 벨기에가
1993년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132%에 달하는 국채를 발행한 것을 위시
하여 7개국에서 국내 총생산의 50%를 넘는 국채발행고를 기록하고 있다.

이 나라들은 물가의 상승이 채무를 자동적으로 변제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약간의 위로를 받고 있을지 모른다. 예컨대 92년말 현재 국채발행 총액이
110조원이었다고 하자. 93년말까지 국채발행고에는 변화가 없었는데 이
한햇동안 물가가 10%상승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국채발행고가 명목상으로는
110조원에 머물고 있지만 10%의 물가상승률을 감안하여 계산한 실질가치는
100조원으로 떨어진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하여 국가의 채무가 자동적으로 변제되는 것을 가리켜
"인플레이션세" (inflation tax)라고 부른다. 예를들어 국세청이 94년
한햇동안 40조원의 세금을 거두었다고 발표했다고 하자. 이 통계는 국민
들의 주머니에서 거둔 세금만을 포함하고 있을뿐 인플레이션세는 전혀 포함
하지 않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국가의 채무가 10조원 줄었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정부가 그만큼의 수입을 얻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해의 실질적인 정부수입은 50조원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 된다.

정부가 인플레이션세를 거두고 있다면 한햇동안의 재정수지도 보통과는
다른 방법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예를들어 93년 한해의 정부세입이
46조원인데 지출은 50조원이라고 하자. 보통의 방법으로 정부의 재정
수지를 따지면 4조원의 재정적자가 났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10조원에 해당하는 인플레이션세가 걷혔다면 실질적인
재정수지는 적자가 아니라 6조원의 흑자가 난 셈이다.

정부만이 인플레이션에 의해 자동적으로 채무가 변제되는 이득을 얻는
것은 아니다.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와같은 이득을 얻을수
있다. 물론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것이 분명하면 돈을 꿔주는 사람은 예상
물가상승률만큼 더 높은 이자율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실질이자율은 명목
이자율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것으로 구해지는데,돈을 꿔주는 사람은 최소한
일정 수준의 실질이자율을 받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행같은 공식 금융기관은 정부의 통제 때문에 이자율을 마음대로
올려 받지 못한다. 한해에 물가가 몇십%씩 뛰고 있는 상황에서 10%를 조금
넘는 이자율에 은행에서 돈을 빌린 사람이나 기업이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으리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인플레이션이 심했던 60,70년대에
우리 정부가 막대한 인플레이션세를 거둘수 있었을뿐 아니라,그 와중에서
소리없이 부자가 된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