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0일의 메모리얼 데이"(현충일)를 앞두고 백악관에는 클린턴
대통령의 가슴을 할퀴는 우편엽서들이 연일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베트남전쟁때 귀하께서 취한 행동에 비추어 오는 현충일에 베트남
전몰장병 위령탑이나 무명용사묘역에서 참배하는 위선을 제발 삼가십시오.
귀하의 그 "존귀한"양심이 불러온 반전활동이 적을 즐겁게하는 동안 우리의
병사들은 정부의 합법적 절차에 순종하다 전선에서 죽거나 불구가
되어갔습니다"
은퇴한 한 법률가와 두 베트남 참전용사가 주도한 이 항의엽서보내기
캠패인에 많은 이들이 호응,백악관으로 이미 발송된 엽서가 1만~1만5천장을
헤아린다고 한다.

클린턴대통령은 고심끝에 현충일날 어떠한 의식이나 묘지참배도 않겠다고
발표했다. 케네디이후 존슨대통령을 제외한 역대 모든 대통령들은 이날을
빼놓지 않고 앨링턴 국립묘지를 참배해왔다. 베트남전쟁때의 병역기피가
두고두고 부담을 안기고 있는 것이다.

작년 선거운동때 클린턴은 자신의 "대통령취임 첫1백일은 미국 군역사상
가장 생산적인 1백일이 될 것"이라고 호언했다. 그러나 그 "1백일"은 잦은
범실과 허수와 정치적 좌절의 연속이었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과 "민주당 의회"만 믿고 그는 돈키호테의 기세로 1백일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첫 작품"인 군대내 동성연애 허용은 군부와 같은
민주당의 샘 넌 상원군사위원장의 반대로 브레이크가 걸렸다. 기대를
모았던 "경제활성화 대책"은 공화당의 토의지연전술로 의회통과가
무산됐다. 백악관의 리온 파네타 예산실장마저 "이래선 안된다. 일의
우선순위를 새로 정하고 접근방법과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낭패"라며
"항명"을 서슴지 않았다.

"제도권정치"와의 합의형성과정을 무시하고 대중인기위주로 모든 것을
한꺼번에 도모하려다 초점과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것이다. 선거운동과
"국가의 관리"를 구분못하고 정치와 정책을 혼동,균형을 잃었다는 지적도
따갑다. "워싱턴 바닥의 생리를 잘 몰랐다. 많은 것을 배웠다"고 클린턴
스스로 고백할 정도다.

그 반성으로 그는 백악관참모진의 재정비에 나섰다. "현 참모들이
숙련되지 않은 "어린애"들이어서 "어른들"로 보강이 시급하다"고 민주당
의회쪽에서 더 성화를 부렸다. 최근들어 정치팀과 주례회의를 갖고
대통령의 이미지개선에 부심하는등 클린턴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메리카를 변화시키기에 앞서 그 자신의 변화부터 시도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