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인간의 뇌에 '가짜 기억'을 심을 수 있을까
1990년 영화 ‘토탈 리콜’에서 화성 여행을 가고 싶은 퀘이드(아널드 슈워제네거 분)는 리콜이란 여행사를 찾아간다. 리콜은 만들어진 기억을 주입해 여행을 실제로 가는 것보다 싸고 안전하게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고 광고하는 곳. 퀘이드는 비밀요원이란 콘셉트로 가상 여행을 떠나는데, 그 과정에서 무엇이 진짜 기억인지 혼란에 빠진다.

영화처럼 인간의 기억을 삭제하거나 주입하는 일이 정말 가능할까. 아르헨티나 출신인 유명 신경과학자 로드리고 퀴안 퀴로가는 <뉴로사이언스 픽션>에서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책은 ‘혹성탈출’, ‘매트릭스’, ‘마이너리티 리포트’, ‘인셉션’ 등 SF영화가 얼마나 현실성 있는지를 다룬다.

저자는 영화와 신경과학, 철학, 문학을 매끄럽게 엮어 매혹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 이야기로 시작하는 각 장은 플라톤, 데카르트, 비트겐슈타인 등이 제기한 철학적 질문으로 이어지며, 과학 실험을 소개하면서 과학적 근거를 탐구한다. 그 사이에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의 소설이 등장하기도 한다.

영국 레스터대 석좌교수 겸 신경과학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저자는 2005년 ‘제니퍼 애니스톤 뉴런’을 발견하며 이름을 알렸다.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바꿔주는 뇌 속의 해마에서 발견된 이 뉴런은 미국 인기 드라마 ‘프렌즈’에 출연한 애니스톤 등 특정 인물의 이미지를 볼 때나 이름을 들었을 때 활성화된다. 오프라 윈프리나 스타워즈 속 인물인 루크 스카이워커에게만 반응하는 뉴런도 있다. 물론 단 하나의 뉴런이 아니라 수천 개의 뉴런을 뜻한다.

이 뉴런들은 ‘개념’에 반응한다. 얼굴의 특정 부위에 반응하는 뉴런이 있다는 건 알려졌지만, ‘개념 뉴런’을 발견한 건 퀴로가가 처음이었다. 이 뉴런은 연관된 개념에도 반응했다. 제니퍼 애니스톤 뉴런은 프렌즈에 같이 나온 리사 쿠드로에게도 반응했다. 루크 스카이워크 뉴런은 스타워즈 속 캐릭터인 요다에게도 반응했다.

[책마을] 인간의 뇌에 '가짜 기억'을 심을 수 있을까
저자는 개념 뉴런이 우리의 기억과 의식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렇다면 이 뉴런을 조작해 인간의 기억을 바꾸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저자는 “가짜 기억을 주입하는 데 상세한 디테일은 필요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으며 추론을 통해 빈 부분을 재구성한다는 의미다.

저자는 어릴 적 브라질 해변에서 형과 시간을 보낸 것을 기억한다고 했다. 얼굴, 파도 소리, 해변에 널브러진 해초 냄새를 기억했다. 어떤 색 수영복을 입었는지, 어떤 대화를 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만약 다른 누군가에게 형, 해변, 브라질 등의 개념 뉴런을 주입한다면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개념 뉴런은 인간에게서만 발견됐다. 이 뉴런을 침팬지 등 유인원에게 이식한다면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갖게 되지 않을까. 저자는 영화 ‘혹성탈출’을 다룬 장에서 이에 대해 논한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블레이드 러너’를 다룬 글에선 인공지능과 인조인간, 복제인간 등이 인간처럼 의식을 가질 수 있는지 살펴본다.

SF영화가 던지는 철학적 질문에 관심이 있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다만 아직 과학적으로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 저자의 추측과 주장이 많이 담겨 있는 점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