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기호. 마음산책 제공
소설가 이기호. 마음산책 제공
"내 소설의 부족한 부분을 돌아보게 만든 책이에요."

지난달 소설집 <눈감지 마라>를 낸 소설가 이기호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쇳밥일지>를 최근 인상 깊게 읽은 책으로 꼽으며 이 같이 말했다.
소설가 이기호 "이 책을 읽으며 제 소설이 부끄러웠어요" [작가의 책갈피]
<눈감지 마라>는 지방 사립대를 졸업한 두 친구 '정용'과 '진만'을 중심으로 지방 청년의 삶을 그려냈다. 일간지에 연재했던 짧은 소설 49편을 묶었다. 각기 읽어도 여운을 즐길 수 있는데, 책을 죽 읽어가다 보면 두 청년을 주인공으로 한 장편소설 같다.

'지방 청년 용접 노동자' 천현우가 쓴 <쇳밥일지>는 <눈감지 마라>와 비슷한 듯 다르다. 일단, 소설이 아니라 저자의 경험을 쓴 에세이다. 인문계 졸업생인 '정용'과 '진만'과 달리 천 작가는 '쇳밥'을 먹는 노동자다.

천 작가는 책 도입부에 이렇게 적었다. "청년공으로서 살아가기란 생각보다는 힘들되 꾸역꾸역 생존은 가능한 나날이었다. 그때의 시간들. 고와 낙이 있었고, 땀과 눈물이 있었으며, 희망과 좌절이 공존했고, 꿈이 짓이겨졌다가 다시금 피어났던 과거를 문자로 남겨보고자 한다."
소설가 이기호 "이 책을 읽으며 제 소설이 부끄러웠어요" [작가의 책갈피]
이 작가는 “지방, 공장, 기술직의 세계는 제가 쓴 소설 속 청년들의 현실과는 또 다른 세계라 인상 깊게 읽었다"며 "오늘날 청년들이 처한 현실을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담아낸 글이라 놀라웠고, 동시에 제 소설이 부족하게 느껴져 부끄러웠다”고 했다.

겸양 섞인 이 작가의 고백과 달리, <눈감지 마라>는 지방 청년들의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현실을 따뜻하게, 또 서늘하게 포착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는다.

이 작가 특유의 익살과 풍자는 소소한 웃음, 그리고 길고 쓴 뒷맛을 남긴다. 월세만 받던 고시원에서 보증금 500만원을 요구하자 막막한 마음을 소설은 이렇게 묘사한다. “남들은 몇 억원씩 되는 아파트를 영혼까지 끌어 마련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진만의 영혼은 과연 어떤 영혼인가? 무슨 다이소 같은 영혼인가?”

강원도 원주 출신 이 작가는 광주대 문예창작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때 지방 청년이었고, 지금도 지방 청년들과 호흡한다. 이 작가는 "제자들이 들려준 이야기가 소설에 많이 녹아있다"며 "제자들에게 안부를 묻는 마음으로 소설을 써나갔다"고 말했다.

"소설을 다 쓰고 나서도 '정용'과 '진만' 두 친구들이 자꾸 생각나서 가슴이 아파요. ‘내가 과연 지방 청년들의 마음을 얼마나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나’ 고민했지만, 결국 책을 낸 건 지방 청년들의 삶을 이야기해야 우리가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책의 제목은 중의적 의미를 담았어요. 어른들을 향해서는 ‘이 청년들도 우리의 현실이니까, 눈감지 마라’고, 청년들을 향해서는 ‘부디 살아남으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