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여정 그린 첫 에세이 '책과 우연들'…과학책서 아이디어 얻기도
"'없는 척' 했던 SF, 왜 잘 팔리는지 주목하는 건 변화"
김초엽 작가 "창작은 견딜만한 고통, 쓰기 위해 읽는다"
국내 대표 과학소설(SF) 작가 김초엽(29)은 중학생 때 우연히 '교실 밖 화학 이야기'란 책을 접했다.

중고생에게 화학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주는 과학책이었다.

운명처럼 과학에 빠져든 건 이때부터다.

포항공대에서 화학을 전공한 그는 2017년 한국과학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덜컥' 소설가가 됐다.

소설의 지향점을 고민할 때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만났다.

상실과 회복이란 뻔한 주제를 아름답게 그린 데 감명받은 그는 "이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감정의 기준점을 세웠다.

최근 경기도 파주시 출판사 열림원에서 만난 김초엽은 책과 만난 가장 우연한 순간으로 이 두 권을 망설임 없이 꼽았다.

"저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변화시킨 책들이에요.

"
그가 지난달 펴낸 첫 에세이 '책과 우연들'(열림원)에는 '편협한 독자'에서 '성실하게 읽는 사람'이 되고 '쓰는 사람'으로 나아간 작가의 궤적이 펼쳐진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방대한 책장을 둘러보고, 창작 과정을 따라 가보고, 일상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독자로서 저도 다른 작가들의 작업 방식이 궁금했어요.

어떤 작가는 예술가 이미지 그대로 흘러나오는 대로 작업하지만, 저는 이과 태생이라 많이 찾아보고 공부하고 자료를 축적해서 글을 써요.

글쓰기보다 '서치' 과정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
김초엽 작가 "창작은 견딜만한 고통, 쓰기 위해 읽는다"
스스로 "스토리텔링 재능이 없고 밑천 없는 작가"라는 그는 수많은 책에 빚지며 세계를 확장하는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김 작가는 "읽고 쓰기를 즐기는 아마추어에서 직업 작가로서의 마인드를 장착해야 했다"며 "글쓰기는 읽기가 수반되는 일이고 의무적인 독서가가 됐다.

하지만 읽기와 쓰기의 발전 속도가 달라졌고 그런 변화가 좋았다"고 돌아봤다.

이제 그는 글쓰기가 "작가 안에 있는 것을 소진하는 과정이라기보다 바깥의 재료를 가져와 배합하고 쌓아 올리는 요리나 건축에 가깝다"고 느낀다.

그는 소설을 쓰고 싶은 이유를 다시 찾을 때 "이야기의 세계"로 향한다.

과학책부터 작법서, 국내외 작가들의 에세이까지 독서량이 방대하다.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이야기를 뻗어가는 편이다.

대표작인 첫 장편 '지구 끝의 온실'을 쓸 땐 논픽션 '인간 없는 세상'을 읽고서 식물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기로 했다.

단편 '수브다니의 여름 휴가'는 촉각을 다룬 '한없이 가까운 세계와의 포옹'에서, 단편 '캐빈 방정식'은 인지과학책인 '감각의 미래'에서 출발했다.

"인간의 시간 인지 감각을 소설에 접목해보는 식이죠. 논픽션의 특이한 개념에 기대기도 하고요.

과학책이 주는 인식을 확장하는 느낌은 SF 독자의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통해요.

"
참신한 상상력과 유려한 필력이 강점인 그가 작법서를 사랑하는 건 의외다.

10대 때부터 작법서를 좋아했고, 소설가가 되기 전엔 부적처럼 들고 다녔으며, 데뷔 이후에도 열심히 사 모았다.

그는 "이번 에세이를 쓰며 작법서대로 소설을 쓰고 있지 않단 걸 새롭게 발견했다"며 "실용적인 조언이 글쓰기에 녹아있겠지만, 작가의 무의식 영역에 흡수돼야 진짜 색깔이 되는 것 같다"고 웃었다.

김초엽 작가 "창작은 견딜만한 고통, 쓰기 위해 읽는다"
SF 작가답게 SF 세계에 대한 태도는 시종일관 탐구적이다.

그는 책에서 "SF는 인간중심주의라는 오랜 천동설을 뒤집는다"며 "SF가 수행하는 불완전한 시도를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서로 다른 사고방식, 낯선 세계 간의 추돌을 보여주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SF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숱하게 받은 그는 개념의 모호함, 창작의 장르적 특성, 문학계 인식 변화까지 짚어본다.

김 작가는 "창작자 입장에서 현실 이야기는 누구에 대해 쓸지 인물이 중요하지만, 가상 세계 이야기는 세계 구조나 시스템 혹은 인간이 아닌 다른 물적인 존재들이 중요할 수 있다.

비평 영역에서도 장르적 맥락의 차이에 따라 각각의 미학을 평가해야 한다"고 짚었다.

"대중문화를 통해 더는 가상 세계가 낯설지 않지만 문학계는 변화가 매우 느려요.

그래도 과거엔 문단의 호평작과 대중 선호 작품의 갭이 컸다면, 점차 섞이고 있죠. 또 SF를 '없는 척' 취급했지만, 이젠 왜 잘 팔리는지 주목하고 본격 문학 작가들도 대중적인 글을 써요.

토대가 다져지는 상황에서 동시대 작가들이 등장하고 독자 호응을 끌어내며 상호작용하고 있죠."
김초엽 작가 "창작은 견딜만한 고통, 쓰기 위해 읽는다"
그간 멀고 낯선 세계에 시선을 둔 김 작가는 에세이를 쓰며 오랜만에 내 안으로 눈을 돌렸다.

표지에도 그의 얼굴을 모티브로 한 일러스트를 담았다.

올해 초 고향인 울산을 떠나 경기도 일산에 작업실을 마련한 그는 "데뷔 이후 쓴 작품이 작년에 몰아 나와서 좀 지쳐있었다"며 "올해부터는 '주도성을 찾자, 한 타임 쉬어가자'는 생각으로 2월부터 여름까지 에세이를 썼는데, 자료가 많아 만만치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제가 가질 수 있는 직업 중 가장 적성에 맞는 일이죠. 연구실에서 일종의 조직 생활도 해봤거든요.

어느 직업이든 고통이 수반되는데, 글쓰기는 제게 감당하고 견딜 수 있는 고통이랍니다.

(웃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