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미테구 모아비트 지역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사진=연합뉴스
베를린 미테구 모아비트 지역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사진=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독일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철거 요청을 한 것에 대해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가해 역사가 알려질까 봐 두려운 모양"이라며 역사 왜곡을 막아내기 위해 한국의 콘텐츠가 주목받는 지금이 '적기'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12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민간단체에서 세운 소녀상을 일본의 총리가 독일 총리에게 철거를 직접 요청한 걸 보니, 일본 사회 전체가 자신들이 행한 '가해 역사'가 전 세계에 계속 알려지는 게 무척 두려운 모양"이라고 비꼬았다.

일제강점기 쌀 수탈, 강제노역, 위안부, 관동대지진 학살 등 탄압받는 조선인들의 모습과 자이니치(재일조선인)의 삶을 그린 애플TV+ '파친코'를 언급하며 "일본의 '가해 역사'가 드라마에 자연스럽게 드러나면서 일본 사회는 긴장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해당 드라마에 대해 일본의 일부 네티즌들은 "한국이 새로운 반일 드라마를 세계에 전송했다"는 등 비난을 한 바 있으며 일본 내 매체들은 '파친코'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는 모양새를 보이기도 했다.

서 교수는 이와 관련해 "'문화 콘텐츠'의 힘은 대단하다"며 "몇 년 전에는 영화 '군함도'와 국민 예능 '무한도전'의 '하시마섬의 비밀'편이 방영되면서 군함도의 강제노역이 더 알려질까 봐 일본은 또 긴장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일본의 지속적인 역사 왜곡을 막아내기 위해선 '문화 콘텐츠'를 통한 전 세계 홍보가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아무쪼록 '한국의 콘텐츠'가 전 세계인들에게 주목받는 요즘, '때'는 왔다고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은 재독 시민사회단체 코리아협의회(KoreaVerband) 주관으로 2020년 9월에 1년 기한으로 베를린시 미테구 모아비트에 설치돼 집회·시위 겸 콘서트 등 지역 시민사회 활동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지난해 9월 미테구청 도시공간 예술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올해 9월 28일까지 설치기간을 1년 연장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사진=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사진=연합뉴스
기시다 일본 총리는 지난달 28일 일본을 방문한 숄츠 총리와 정상회담에서 "위안부상이 계속 설치돼 있는 것은 유감"이라며 "일본의 입장과는 전혀 다르다"며 철거를 요청한 것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산케이 신문은 "이 같은 요청을 받은 숄츠 총리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며 "숄츠 정권이 대일 관계를 중시하지만, 소녀상은 미테구청이 관할하고 있어 독일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작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외교부는 "민간 차원에서 이뤄지는 활동에 한일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코리아협의회는 긴급 성명을 내고 "이례적으로 일본 총리가 나서 베를린 소녀상 철거를 요청한 것은 시민들의 자유로운 의사표현 및 시민사회의 활동에 재갈을 물리려는 전체주의적 행위일 뿐 아니라, 지자체의 행정에 연방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는 독일의 정치문화에 무지하고, 상부로부터 부당한 압력이나 개입에 대해 낡은 수직적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상징인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은 국가가 세운 것이 아니라 진정한 평화와 정의를 염원하는 베를린 시민들이 세운 기념비로 관할 미테구청에서 적법한 심사를 통해 설치가 허가됐다"면서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요청한 것은 "일본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스스로 자기를 부정하는 어리석음"이라고 꼬집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