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 열린 임대아파트…에어컨 없어 자연 바람에 의지
"거동 어려운 장애인, 더운 여름 체력 저하로 더 힘들어"
[르포] "움직이지 못해 엉덩이엔 욕창" 폭염이 힘든 장애인
"더운 여름 같은 자세로 계속 누워있다 보면 엉덩이 밑에 욕창이 생겨 너무 힘듭니다.

지팡이를 짚더라도 꼭 다시 외출해 바깥바람을 쐬고 싶습니다.

"
최근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부산에서 연일 낮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을 기록하는 가운데 거동이 어려운 장애인들은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20일 오전 모라3동에 있는 한 임대아파트.
복도식 아파트에 들어서니 집 곳곳마다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에어컨 작동이나 안전상 이유로 모두 문을 걸어 잠근다고 하는데, 이곳 아파트는 모두 문을 활짝 열어놓은 상태였다.

모라3동 마을행복센터 관계자는 "에어컨을 설치한 가구가 거의 없는 데다 퀴퀴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여름이면 주민들이 현관문을 열어 놓는다"며 "요즘 아파트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광경"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관문에 설치하는 방충망이 8∼10만원가량인데 이마저도 비싸게 느껴지다 보니 설치하는 가구가 많이 없다"며 "여름에는 벌레도 많아 어려움을 호소하는 취약 계층이 많다"고 고충을 전했다.

[르포] "움직이지 못해 엉덩이엔 욕창" 폭염이 힘든 장애인
마을행복센터 직원을 따라 한 집 안에 들어가니 캄캄한 방 안 조립식 침대 위에 정모(56)씨가 두꺼운 이불을 덮은 채 누워있었다.

당초 상체 마비로 몸을 가누기 어려웠던 정씨는 지난해 하체 마비까지 찾아오면서 현재 왼쪽 팔만 간신히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다.

종일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정씨는 형광등에 눈이 부셔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삐질삐질 나는 이곳에서 정씨는 선풍기 1대에 의지해 생활하고 있었다.

이 선풍기는 후원을 받은 지 4일 만에 사회복지사가 조립해 간신히 틀어놓은 것이라고 정씨는 설명했다.

주 2∼3회 방문하는 간병인이나 사회복지사가 오지 않을 경우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씨는 "선풍기를 조작할 수 없으니 집에 들르는 사람에게 타이머를 맞춰달라고 요청한다"며 "중간에 꺼지더라도 계속 선풍기를 틀면 머리가 아프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머리맡에는 몸에서 흐른 땀 등을 닦고 난 휴지들이 눈에 띄었다.

정씨는 "여름이면 제대로 씻을 수 없는 것이 가장 힘든데 특히 얼굴 쪽이 가장 찝찝하다"며 "간병인들이 닦으라고 방문할 때마다 물에 적신 수건, 휴지 등을 주변에 두고 간다"고 말했다.

그는 "더운 여름 같은 자세로 계속 누워 있다 보니 엉덩이 밑에 욕창이 계속 생겼다"며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피부가 썩어버리기도 한다는데 다행히 간병인 등 도움을 주는 분들이 방문 때마다 계속 닦아줘 많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르포] "움직이지 못해 엉덩이엔 욕창" 폭염이 힘든 장애인
이날 방문한 직원 2명은 정씨를 위해 준비한 여름 이불을 깔려고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았고, 장정 2명이 온 힘을 다한 뒤에야 간신히 교체할 수 있었다.

1명이 정씨 어깨를 들어 한 편으로 옮긴 사이 다른 1명이 여름 이불로 재빨리 교체했다.

정씨는 "기존 여름 이불이 너무 낡아서 덮지 못했다"며 "지금이라도 얇은 이불을 받아서 시원하게 여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음을 내비쳤다.

그는 "걸을 수 있다면 이불 밖으로 나와 잠시 외출하면서 시원한 바람이라도 쐴 텐데 그러지 못해 슬프다"고 덧붙였다.

여름이면 쇠약해지는 체력 역시 걱정이라고 정씨는 토로했다.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계속 누워있다가 보니 소화도 안 되고 답답한 기분만 자꾸 든다고 한다.

정씨는 "체력이 자꾸 안 좋아지는데 소화력도 함께 떨어지다 보니 밥을 안 먹게 된다"며 걱정했다.

[르포] "움직이지 못해 엉덩이엔 욕창" 폭염이 힘든 장애인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정씨는 오는 여름 폭염을 이겨내고 혼자서 움직이기 위해 열심히 재활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곰팡이가 슬어있는 벽을 왼쪽 팔로 밀며 연신 힘을 줬다.

정씨는 "현관문을 열어 통풍시키고, 혼자 있을 때는 윗옷을 벗는 등 나름 시원하게 지내려 한다"며 "이렇게 열심히 운동하면 예전처럼 지팡이를 짚어서라도 밖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힘주어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