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본·언해본 모두 우리말로 옮겨…일반인용 도서도 발간
'천주실의' 번역 노용필 박사 "쉽게 쓰느라 20년 걸렸네요"
"2001년부터 마음먹고 번역을 시작했어요.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친 부인과 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딸이 초고를 보고는 너무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쉽게 쓰느라 20년이 걸린 것 같습니다.

"
노용필 한국사학연구소장이 번역의 어려움을 토로한 책은 '천주실의'(天主實義)다.

그는 최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천주실의는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1552∼1610)가 저술한 천주교 교리서이다.

서양 학자와 중국 학자가 대화하는 방식으로 썼다.

중국에서 1603년 처음 간행됐고, 1609년까지 4판이 발행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천주실의는 주석을 삽입하고 목록을 만든 이른바 '주석목록본'이 제작됐다.

조선시대 후기에 천주실의를 한글로 옮긴 언해본 '텬쥬실의'는 초판본이 아니라 후대에 출현한 주석목록본을 저본(底本)으로 삼았다.

노 소장은 한문 주석목록본 원문과 언해 필사본 원문, 번역문, 해설을 모두 실은 두툼한 연구자용 서적 두 권과 한글 번역문만 수록한 한 권짜리 얇은 일반인용 책을 각각 발간했다.

서강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은 노 소장은 본래 고대사를 전공했지만, 조선 후기 천주학(天主學)에 관해서도 꾸준히 연구하며 논문을 발표해 왔다.

그는 천주실의를 번역한 이유를 묻자 "한국학에 도움이 되면서도 남이 하지 않은 일을 해야 한다고 배웠다"며 "강의할 때 자신 있게 권할 만한 천주실의 번역본이 없었고, 국내에 마테오 리치 전공자도 거의 없다"고 답했다.

천주실의는 이미 한글 번역본이 시중에 나와 있지만, 기존 서적은 역자가 여러 명이어서 용어가 통일되지 않거나 일반인이 이해하기에는 내용이 어렵다는 의견이 있었다.

노 소장은 "천주실의가 중국에서 관심을 끌자 조선인들도 보게 됐고, 18세기 후반 들어서는 강독과 강의가 이뤄져 언해본이 만들어진 듯하다"며 "옛 한글로 쓴 언해본을 읽기가 무엇보다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대학교에서 한동안 학생들과 함께 언해본을 판독하는 작업을 했고, 서예가의 도움도 받았다"며 "한문 번역을 위해서는 중국어 사전에 코를 박을 정도로 집중했다"고 덧붙였다.

노 소장은 천주실의와 함께 '조선 후기 천주학사 연구'라는 학술서도 펴냈다.

앞서 선보인 '한국 천주교회사의 연구', '한국 근현대 사회와 가톨릭'과 3부작을 이루는 완결편이다.

그는 책에서 "정조는 천주학을 언급하면서 전면적 부정이나 본격적 비판을 가하지 않았다"며 "실체가 유학의 본체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천주학의 전국적 확산에는 무엇보다도 천주서 언해 필사본 등장과 보급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본다"며 "언해본은 언문 해독 능력을 갖춘 이들에게는 문자 그대로 복음을 접하는 듯한 감흥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며, 사람들은 책을 애지중지하며 읽고 또 읽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