巨惡에 홀홀단신으로 맞서다…거장의 예술은 투쟁으로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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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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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위가 늘 행위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때가 많다. 앞장서 나서기 두렵다거나, 얻을 게 없다거나, 애써 이룬 것을 포기해야 한다거나. 변명거리야 여러 가지다. 무모해 보이는 용기를 연결고리 삼아 당위를 행위로 증명해낸 이들이 시간을 초월해 기억되는 까닭이다. 그리고 “10만 명이 죽었다!”라고 외치며 미술관에 드러누운 예술가 낸 골딘(71)이 이를 몸소 보여준 고결한 인간으로 존경받는 이유다.
▶▶▶ [관련 인물] 낸 골딘
15일 개봉하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현대 사진예술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거장 골딘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동시대 미술에서 골딘은 저명한 사진가다. 에이즈 환자나 마약 중독자, 매춘부, 성소수자 같은 감춰져 있던 ‘터부’를 찍어 시대를 표현한 개념과 슬라이드쇼로 풀어낸 독창적 기법은 왕가위, 자비에 돌란 같은 예술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과 유럽 유수의 현대미술관 중 그의 작품을 소장하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개인의 삶을 필름에 담아 스크린으로 소개할 만큼 골딘의 예술적 성취가 뛰어나단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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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2017년 저항그룹 ‘P.A.I.N(처방 중독 즉각 개입)’이란 단체를 결성해 전 세계 미술관을 다니며 시위를 벌이는 골딘을 추적해 나간다. 중독성 높은 옥시콘틴 성분이 든 합법적 마약으로, 5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오피오이드를 반대하고, 이를 퍼뜨린 제조사 퍼듀파마에 대한 규탄이 당위다. 문제는 퍼듀파마 소유주인 새클러 가문이 미국 사회를 주무르는 거대한 세력이라는 것. 죽음의 약을 팔아 축적한 부로 새클러 가문은 주류 미술관에 자금을 쏟아부어 자신의 이름을 딴 전시관을 만드는 등 20세기 메디치로 군림한 이들에게 골딘은 미약한 존재일 뿐이었다.
▶▶▶[관련 책] 펜타닐

▶▶▶[관련 칼럼]50만 목숨의 대가로 기부한 美 부호... 그걸 거부한 미술관들
미국을 발칵 뒤집은 내부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시티즌 포’로 오스카를 거머쥔 로라 포이트라스의 연출은 영화 몰입도를 더한다. 사진에 빠지고, 마약과 동성애를 일삼고, 돈을 벌기 위해 매춘까지 했던 골딘의 혼란한 과거와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고결한 현재를 병치하는 구조를 통해 그의 무모한 투쟁이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인지를 흥미롭게 설명한다. “전기, 엘레지, 탐사보도를 매끄럽게 결합하는 경이”라는 외신의 평가는 꽤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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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