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사연 품은 2020 전국다문화가족 배드민턴대회 참가자들

11년 만에 처음으로 왕중왕전 방식으로 열린 '2020 전국 다문화가족 배드민턴대회'에는 그간 볼 수 없었던 개성 넘치는 참가자들이 눈길을 끌었다.

정예 멤버라는 자부심을 안고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은 28일 "우승컵을 놓고 격돌한 감동은 이미 누렸으니 오늘만큼은 즐기자는 마음가짐으로 나왔다"고 입을 모았다.

'이용대 영상보며 맹연습' 다문화 배드민턴 이색 참가자 눈길

손홍민(51·경기도 오산) 씨와 선부영(31) 씨 부부는 최근 몇 년간 대회를 주름잡은 강자다.

2014년 부부복식 우승을 시작으로 2015년에는 손 씨가 남자단식 2위, 2017년에는 선 씨가 여자단식 1위를 차지했다.

결혼 10주년에 열린 이번 대회에는 부부복식에 출전해 6년 만에 정상 탈환을 노린다.

다만 이들은 "더 이상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고 힘줘 말했다.

배드민턴이야말로 한국 생활 적응에 힘겨워하던 베트남 출신의 선 씨를 밝게 만든 1등 공신이기 때문이다.

성격이 여린 선 씨는 한국에 정착한 2010년 당시만 해도 타인과 어울리는 일이 쉽지 않았다.

다문화 가정을 향한 일부 편견 어린 시선은 그를 더욱 위축시켰고, 이듬해 첫째 아이를 낳고 산후우울증까지 겹쳐 바깥에 나서는 것조차 힘들어 했다.

그런 아내가 안타까웠던 손 씨는 궁리 끝에 "함께 배드민턴을 배워보자"고 권유했고, 이게 신의 한 수가 됐다.

손 씨는 "파트너와 호흡이 중요한 종목 특성상 부부간에 대화도 많이 나누며 가까워졌다"며 "나중에는 동호회에 가입하고 회원들과 어울리면서 한국어도 늘었고 친목도 다졌다"고 말했다.

"아내 실력에 감탄한 이들이 누구에게 배웠냐고 물어볼 때 아내는 '남편이 가르쳐줬다'고 답해요.

그때 정말 기분 최고입니다.

이제는 저보다 훨씬 잘합니다.

"
이들 부부는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야외 활동을 즐기는 데 제약이 크지 않았냐"고 반문한 후 "오늘은 처음 배드민턴을 배웠던 그 시절처럼 수다도 많이 떨고 재미있게 놀다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대 영상보며 맹연습' 다문화 배드민턴 이색 참가자 눈길

소풍 가는 기분으로 대회를 맞이하는 부부는 또 있다.

부부복식 2연패를 노리는 진학일(50·충북 진천) 씨는 "난 아내만 믿고 나왔다"고 웃음을 지었다.

2007년 백년가약을 맺은 베트남 출신 아내 이수연(34) 씨가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동네 배드민턴 동호회에 가입을 제안했다.

배드민턴채를 쥐는 일 조차 낯설어 하던 아내는 진 씨의 생각보다 훨씬 빨리 적응했다.

셔틀콕을 주고 받는 재미를 느꼈고 회원들과도 금세 친해져 동호회에서 '인싸'(insider: 인기 있는 사람)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그는 "주말마다 사람들과 어울려 땀도 흘리고, 뒤풀이도 빠짐없이 참여하면서 배드민턴 실력 뿐만 아니라 우리말도 늘었다"며 "향수병도 많이 사라진 것 같아 배드민턴을 권유하길 참 잘했다 싶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디펜딩 챔피언이긴 하지만 이미 '아내의 행복'이라는 큰 상을 받은 만큼 우승은 바라지도 않는다"며 "많은 다문화가정 구성원이 한데 어울릴 수 있는 대회가 많아지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용대 영상보며 맹연습' 다문화 배드민턴 이색 참가자 눈길

올해 경동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해 새내기가 된 최선진(20·강원 횡성) 씨는 지난해 10대 마지막 시절에 누렸던 감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해 8월 열린 제10회 전국다문화가족 배드민턴대회 남자 청소년 단식 부문에서 준우승을 했기 때문이다.

2014년과 2017년 같은 부문에 출전해 예선 탈락의 아쉬움을 맛본 뒤 권토중래하며 실력을 키운 결과다.

올해 성년이 된 최씨는 성인 남자 복식 부문에 출사표를 던졌다.

일찌감치 패인을 분석하고 실력을 갈고닦았다.

그는 "당시에 실수만 좀 줄였다면 승산이 있었을 텐데 큰 경기라 부담이 커서 적극적으로 배드민턴채를 휘두르지 못했다"며 "올해는 나만의 훈련 비법이 있다"고 귀띔했다.

바로 그의 우상이자 2008 베이징(北京) 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 우승자인 이용대 선수의 영상이다.

유튜브에서 출전 영상 수십편을 챙겨보며 매일 두세 시간씩 연습했다.

그는 "마침 성인 무대 데뷔전이라 성적 부담감도 덜하다"며 "즐기자는 마음으로 나서면 내 우상처럼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웃었다.

사회복지사라는 꿈을 향해 한발씩 나아가고 있다는 그는 "오늘 대회처럼 다문화 청소년이 행복하고 즐길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을 구성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싶다"며 "언젠가 꼭 이용대 선수를 만나 '팬심'을 고백하고 함께 사진도 찍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

'이용대 영상보며 맹연습' 다문화 배드민턴 이색 참가자 눈길

여자단식 부문에 출전한 사노 노리코(佐野紀子·51·경기 고양시) 씨는 말 그대로 삼전사기다.

이 부문에 2012∼2013년, 2015년 세차례 출전해 2위, 4위, 2위라는 성적을 냈다.

그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항상 결승전에서 만난 선수 모두 쟁쟁한 실력을 갖췄다"며 "프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경기 운영이나 섬세함 등이 너무 완벽했다"고 기억했다.

고향인 일본 후쿠오카(福岡)현에서 중고등학교 시절 테니스 선수로 활동했던 그는 데뷔무대인 '2012 전국다문화가족 배드민턴대회' 당시 단 사흘 동안 준비했음에도 결승까지 오르는 성적을 냈다.

같은 네트 종목이다 보니 응용할 수 있는 기술이 많았던 덕분이다.

대회마다 다크호스로 떠올랐던 그는 "아쉽지만 올해 역시 우승컵을 들어올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몸을 낮췄다.

2017년께 연습하던 중 발목 골절 부상을 당했고, 유년시절부터 라켓을 휘두르다 보니 무릎과 어깨에도 잔부상이 슬슬 생긴 탓이다.

"무뚝뚝한 남편은 '떨어질 거 왜 나가냐'고 구박하지만 사실 저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라는 걸 알아요.

성적에 욕심내기 보다는 늦가을 정취를 느끼면서 하루 종일 웃고 가고 싶어요.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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