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7일 ‘여우락 페스티벌’ 무대에 함께 오르는 명창 강권순(오른쪽)과 베이시스트 송홍섭.  국립극장 제공
다음달 17일 ‘여우락 페스티벌’ 무대에 함께 오르는 명창 강권순(오른쪽)과 베이시스트 송홍섭. 국립극장 제공
경쾌하게 흐르는 전자 피아노 선율 위에 구성진 정가(正歌) 가락이 얹힌다. 재즈음악처럼 흥겨운 드럼 소리와 둔탁한 베이스기타 소리가 어우러진다. 묘한 조합이다. 스산하고 비장한 음색이 흐른다. 음악이 절정에 이르자 보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쉼없이 울려 퍼진다. 국가 무형문화재 제30호 여창가곡(女唱歌曲) 이수자인 강권순(51)과 밴드 ‘사랑과 평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출신인 베이시스트 송홍섭(66)이 함께 풀어낸 곡 ‘길군악’이다. 두 명장이 수년간 협업해 지난해 11월 발표한 앨범 ‘지뢰’의 타이틀곡이다.

정가를 바탕으로 새로운 음악을 시도하는 이들이 다음달 17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여우락 페스티벌’ 무대에 선다. 국악밴드 신노이와 함께한다.

정가는 전통 성악의 한 갈래로 시조 또는 가곡을 노래로 풀어낸 것이다. 정가가 속한 정악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궁중과 상류층에서 연주하던 전통음악으로 민속악에 비해 서양음악과 섞기 어려웠다. 시도라도 했다간 국악계 선배 및 동료들의 눈초리가 따가워진다. 이들은 왜 파격을 선택했을까. 지난 14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이들을 만나 물었다.

“제가 부르는 정약용의 시조 ‘매화병제도’ 노래가 흐르는 미디어아트가 프랑스의 박물관에 전시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무도 찾아 듣지 않는다면 가까운 미래에는 박물관에서나 ‘박제된 정가’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현역 예술가로서 ‘죽은 음악’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살아숨쉬는 음악을 하고 싶었습니다.”(강권순)

강권순이 한 프로젝트 그룹에서 알게 된 송홍섭에게 손을 내민 건 2016년. 함께 정가를 대중적으로 풀어보자고 제안했다. 송홍섭도 마다하지 않았다. “팝은 이미 음악적 틀이 완성됐죠. 주물에다 코드를 부어 넣듯 노래를 찍어내고 있습니다. 세계 어디서든 같은 리듬, 같은 화음이 흘러나옵니다. 강 선생님의 제안을 듣고선 ‘새로운 음악’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송홍섭)

작업은 쉽지 않았다. 서로 사용하는 음악용어와 화성, 박자가 모두 달랐다. “서양음악은 시간이 흘러가는 데 딱 맞춰 연주하지만 국악은 가락 안에 녹아든 장단에 맞춰 노래를 부릅니다. 아리랑의 ‘아리 아리 라-앙, 쓰리 쓰리 라-앙’도 서양음악엔 없는 5박자를 갖고 노래를 부르죠.”(강권순) 이 때문에 송홍섭은 박자부터 맞추기 위해 정가를 세밀하게 해체해야 했다. “정가 안에 녹아 있는 장단을 잘게 쪼갰습니다. 그러고 시간을 초 단위로 세면서 오선지에 옮겨 적었습니다.”(송홍섭)

서로 소통하며 미세한 부분을 조절하다 보니 밴드 구성이 독특하다. 서수진(드럼), 남메아리(전자피아노), 박은선(전자피아노)으로 앙상블이 구성됐다. “강렬하게 남성미를 강조하는 록밴드와 다릅니다. 섬세하게 연주하는 음악인들을 모으다 보니 저 빼곤 모두 여성이었죠. 하하.”(송홍섭)

4년간의 연구와 협업 끝에 발매한 앨범은 음악계에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만족하지 않는다. “이제 겨우 오선지 악보로 옮겨놨을 뿐입니다. 누구나 악보를 읽으면 정가 반주를 칠 수 있지만 정가에 어울리는 화성을 찾아야 합니다.”(송홍섭) “화음을 찾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불가능하다면 화성을 버려도 됩니다.”(강권순)

두 사람은 인터뷰 중에도 음악에 대해 쉼없이 의견을 나눴다. 서로 견해가 달라도 좋은 음악을 선보이겠다는 의지는 같았다. “음악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화성을 활용하지 않고도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내면 됩니다.”(송홍섭)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욕 먹는 건 무섭지 않습니다. 정가를 배울 때도 ‘정가가 없어져야 국악이 발전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대중도 즐겨 듣는 정가를 선보여 후배들에게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습니다.” (강권순)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