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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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장 연출부 막내 A 씨.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아직 주로 하는 일은 현장 정리 등 잔심부름이다. 주변에서는 "몸이 힘들지 않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많지만, 주52시간 근무제가 확산되면서 선배들이 막내였을 때처럼 며칠씩 밤을 새우거나 하진 않는다. 그의 한달 월급은 250만 원 정도. 힘들 때도 있지만 억대 연봉자인 선배들을 보면서 자신도 그렇게 전문적인 역량을 갖춘 사람이 되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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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프의 노동력을 갈아 드라마를 만든다"는 혹평을 받았던 촬영 현장이 바뀌고 있다. 최근 드라마 작품 편수가 증가하면서 "잘한다"고 소문난 촬영감독, 조명감독, 미술감독 등 전문 인력은 1년 치 스케줄이 꽉 찼을 정도다. 몸값도 자연스럽게 상승했다. 감독급의 스태프뿐 아니라 막내들의 처우도 많이 개선됐다는 반응이다.

드라마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밝힌 초년생 스태프의 월급은 250만 원에서 300만 원 정도. 대본에 맞춰 현장을 정리하는 3년 차 스크립터의 경우 50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았다. 최근엔 드라마 제작 편수가 늘어나 1개 작품이 끝나도 쉼없이 연달아 진행하기 때문에 프리랜서라곤 하지만 일반 회사원처럼 안정적이라는 평가다.

경력이 높아지고, 일을 잘한다고 소문이 나면 몸값은 더욱 높아진다.

A급으로 분류되는 촬영감독의 경우 하루 일당은 100만 원에서 200만 원, 자신의 장비를 갖고 일하는 조명감독의 경우 장비 대여료를 포함해 일당 200만 원에서 300만 원이 요즘 시세다. 물론 이들 감독의 일당 안엔 함께 일하는 팀원들의 급여도 포함돼 있는데, 최근엔 막내도 일당 15만 원 이상이다. 촬영장 식사비 등 진행비는 따로다. 메인급 스태프의 경우 드라마 1편을 찍으면 1억 원 이상을 버는 셈이다.

몸값이 높아도 러브콜은 이어지고 있다. 지상파에 종편, 케이블과 넷플릭스, 웹드라마까지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능력을 인정받는 스태프들은 "모셔가야 하는 분들"이기 때문.

여기에 올해 주52시간 근무제가 확산되면서 방송 스태프들의 처우는 더욱 좋아졌다는 평가다.

주52시간 근무제는 지난 7월 1일, 1년의 유예 기간이 끝나고 드라마 촬영 현장에 적용됐다. 그동안 드라마 노동 현장은 특수 업종으로 분류되면서 지난 1년 동안 주68시간을 시행해왔다.

본격적으로 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촬영장 분위기도 달라졌다. 쪽잠을 자고 촬영을 이어가는 건 옛말이 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행한 '2016년 방송영상산업백서'에 따르면 방송 스태프의 1일 평균 노동시간은 20시간에서 24시간이 60.9%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15시간에서 20시간 미만이라는 답변이 30.0%로 그 뒤를 이었다. 10명 중 9명이 15시간 이상 근무했지만, 한 달 휴일 기간은 5일에서 10일 미만이라는 게 33%였다. 휴일이 없다는 답변도 8.5%에 달했다.

생방송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촉박한 촬영 일정을 강행한 후유증으로 tvN '혼술남녀' 이한빛 PD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tvN '화유기'에서 세트장 추락 사고가 발생하는 등 열악한 제작환경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지난해 8월에도 SBS '열일곱이지만 서른입니다' 스태프가 폭염 속에서 72시간 촬영하다가 사망하기도 했다.

시간에 쫓기는 촬영을 피하고, 표준근로계약서를 이행하기 위해 촬영 시작 시점이 최소 4개월, 길게는 6개월이 당겨졌다. 과거, 방송 2개월 전에 촬영을 시작해 방송이 진행되는 1~2달 동안 '바짝' 조여서 일했던 분위기에서 사전제작이 아니더라도 미리 나가자는 분위기로 바뀐 것.

'왜그래 풍상씨' 유준상, ''너의 노래를 들려줘' 지연, '닥터탐정' 봉태규 등 배우들도 "주52시간 근무제 덕분에 여유 있게 촬영했다"며 만족감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이런 환경 개선은 드라마 현장에 직접 가는 촬영팀과 조명팀, 연출팀 등에 국한됐다는 지적도 있다. 아직까진 편집, 특수효과 등 후반 작업 등 외주를 주는 부분에 대해선 여전히 노동환경이 열악한 형편이라는 것.

또한 일각에서는 "이전엔 촬영 환경이 빡빡하다 보니 큰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서로 용인하는 분위기였지만, 최근엔 촬영 기간이 늘어나고, 근무시간이 줄어들었는데도 이전의 비용을 그대로 청구하는 건 불합리한 것 같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는 "드라마 제작비에서 가장 많이 차지하는게 인건비인데, 52시간제 확대로 인건비만 30% 정도 늘었다"며 "제작비는 상승하는데, 수익 낮아져 이대론 다같이 도산하는 게 아닌가 걱정도 된다"고 토로했다.

한 중년 PD 역시 "5년 차 스태프 월급이 대기업 부장급"이라며 "'이게 맞는 건가' 싶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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