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일본의 많은 야경장소 중 최고로 꼽혀
70층 호텔서 바라보는 스카이라인 일품
서서히 기우는 낙조 모습은 한폭의 그림
요코하마 도시재생의 상징인 미나토미라이 지역의 야경. 바다를 메워 만든 곳이다.

요코하마 도시재생의 상징인 미나토미라이 지역의 야경. 바다를 메워 만든 곳이다.

20년 전에도 일본 요코하마를 찾은 적이 있었다. 요코하마 항구도시의 후미진 이자카야에서 경쾌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블루나이트 요코하마’가 반복되는 이 노래는 이시다 아유미라는 가수가 부른 엔카였다. “거리에 네온사인이 너무도 아름답네요 요코하마 푸른 등 요코하마 당신과 두 사람 행복해요 언제나처럼 사랑의 말을 요코하마 푸른 등 요코하마~(하략).” 나중에야 가사를 알게 됐지만 당시에도 항구의 불빛은 아름다웠다. 블루나이트 요코하마는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기 전에 들어와 큰 인기를 끌었던 노래다. 20년이 지나 요코하마를 다시 찾으니 항구는 상전벽해를 거듭했고 푸른 등이 반짝이던 항구는 영롱하기 이를 데 없는 불빛이 보태져 빛의 향연을 펼치고 있었다. 요코하마는 높은 자부심과 빼어난 패션 감각을 지닌 사람들이 사는 도시이자 최첨단과 레트로가 뒤섞인 매력적인 도시였다.

미나토미라이21 계획으로 이룬 눈부신 도시 풍경

요코하마는 도쿄를 자주 찾는 관광객도 의외로 잘 들르지 않는 곳이다. 도쿄 인근의 잘 알려진 관광지인 가마쿠라를 가기 전에 들르는 이들은 있어도 작정하고 요코하마를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터놓고 이야기하자면 요코하마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관광지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요코하마를 찾은 이들은 요코하마에 묘한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요코하마는 원래 160년 정도의 짧은 역사를 지닌 젊은 도시다. 에도시대(1603~1867)만 해도 겨우 100가구가 사는 반농반어의 초라한 어촌마을이었다. 개항이 돼 사람이 몰려들었지만 간토대지진과 미군 대공습(1945)으로 도심 절반이 파괴됐다.
 요코하마 항 근처의 오산바시에서 바라본 요코하마의 화려한 야경.

요코하마 항 근처의 오산바시에서 바라본 요코하마의 화려한 야경.

요코하마가 일어서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다. 경제 고도 성장기인 1963년 취임한 아스카타 이치오 시장은 국제문화도시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도심부를 강화하는 미나토미라이21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미래의 항구를 새롭게 그리겠다는 뜻을 담은 미나토미라이21 프로젝트는 요코하마가 자립해 살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수도권 기능 분담을 목적으로 계획됐다. 1.86㎢에 이르는 바다를 메우고 그 땅에 주택지를 조성했다.

현재는 쇼핑몰과 미술관 공원이 들어서서 요코하마의 주요한 관광 코스가 됐다. 오산바시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바라본 고층빌딩 밀집지역은 풍경이 아름다워 사람들이 즐겨찾는 명소 중 하나다. 환상적인 야경 스카이라인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근대의 상징 아카렌가 창고와 뉴그랜드호텔

미나토미라이역21지구의 도심 재개발 사례 중 대표적인 예가 미나토미라이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요코하마 아카렌가 창고다. 붉은 창고라는 뜻의 아카렌가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종종 이용되는 이색적인 곳이다. 아카렌가는 1911~1913년 다이쇼 시대 정부의 보세 창고로 세워진 두 동의 붉은 별돌 건물로 이뤄져 있다. 원래 이곳은 일본 최초의 근대적 항만시설이었다고 한다. 1989년 창고의 사명을 다한 후 9년 동안 역사적 건조물로서 복원공사를 거쳐 2002년 문화상업시설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보세창고가 쇼핑몰로 변신한 아카렌가 창고.

보세창고가 쇼핑몰로 변신한 아카렌가 창고.

아카렌가 창고 1호관은 다양한 기념품점이 들어서 있다. 일본에서도 인기가 높은 요코하마 베스트나 아카렌가 데포 등이 입점해 있다. 2층은 전시나 파티 공간, 3층은 연극과 콘서트 공간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아카렌가 창고 2호관은 층마다 서로 다른 테마로 꾸며져 있다. 1층은 세계 각국 요리를 선보이는 캐주얼 레스토랑과 카페, 소품전문점 등이 있고 2층은 고급 엔티크 가구점, 3층은 중국 요리 전문 레스토랑과 바가 들어서 있다. 아카렌가 창고는 밤이면 더 아름답다. 벽돌 주위로 불빛이 일제히 빛나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서구 문물이 들어오던 시절의 유산은 요코하마 곳곳에 근대 서양식 건축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1927년 문을 연 뉴그랜드호텔이다. 간토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땅에 세워진 근대식 건축물은 요코하마를 발전시키고 싶어 한 당시 사람들의 염원이 모인 곳이기도 하다. 벌써 9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뉴그랜드호텔은 마치 세월이 비켜간 듯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조금 촌스러운 느낌이 드는 푸른 융단에 육중해 보이는 돌계단, 마치 천장까지 이어질 듯한 높고 긴 유리창, 탁자와 의자까지 클래식하다. 심지어 90년 전에 만들어진 엘리베이터가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

요코하마의 역사와 같이한 호텔이다 보니 2차대전 당시 점령군으로 일본을 통치했던 맥아더 장군은 물론 찰리 채플린, 베이브 루스도 이곳에 묵은 적이 있다. 이 호텔 2대 총주방장이 만든 나폴리탄 스파게티는 지금도 호텔의 주메뉴일 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즐겨먹는 스파게티의 원조가 됐다. 1991년 신관이 새롭게 문을 열었지만 중후하고 클래식한 분위기 때문인지 구관에 투숙객이 더 많은 것은 물론 많은 이가 찾는 관광명소가 됐다.

독특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라멘박물관

요코하마에 다양한 관광명소가 있지만 라멘을 주제로 한 박물관은 아무리 생각해도 요즘 속어로 신박하다(신기하다는 뜻). 요코하마에는 라멘박물관이 두 개나 있는데 하나는 신요코하마라멘박물관이다. 1994년 문을 연 라멘박물관은 일종의 라멘 푸드테마파크다.

컵라면 박물관에서는 다양한 토핑으로 나만의 컵라면을 만들 수 있다.

컵라면 박물관에서는 다양한 토핑으로 나만의 컵라면을 만들 수 있다.

박물관 1층에는 라면과 관련된 물품들이 전시돼 있고 지하로 내려가면 1950년대 도쿄 뒷골목을 재현한 듯한 초현실적인 공간이 나타난다. 얼핏 보면 영화 촬영장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공간에는 일본 열도에서 가장 유명한 라멘 전문점 8곳이 입점해 있다. 직접 라멘을 만들어 팔고 있다. 일본 북쪽인 삿포로의 미소라멘부터 후쿠오카 하카타라멘까지 일본 각지의 라멘을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라멘 애호가들은 800엔 정도 하는 1년 정기권을 끊어서 수시로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라멘이 글로벌한 음식이라는 점을 홍보하고 싶었는지 라멘 박물관에는 캐나다의 라멘집과 독일 라멘집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독일 라멘집인 ‘무쿠’ 쓰바이테는 애니메이션 ‘라멘 너무 좋아 고이즈미씨’에도 등장하는 명소다. 워낙 이곳이 유명하다 보니 라멘을 맛보려면 적어도 1시간은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요코하마의 또하나의 라멘 박물관은 컵라멘 뮤지엄이다. 일본 식품회사인 닛신이 세운 이 박물관은 오사카부 이케다시와 요코하마에 있다. 컵라면으로 박물관을 꾸며봤자 얼마나 재미있겠나 하는 편견은 입구에 들어서면서 단박에 깨져버린다. 5개 층을 가득 채운 다양한 콘텐츠와 체험관을 살펴보면 일본인들이 얼마나 라멘을 사랑하는지 실감하게 된다. 박물관 입구에는 ‘인스턴트 라면의 아버지’로 불리는 닛신 식품 창업자인 안도 모모후쿠의 입간판이 놓여 있다. 박물관에는 1958년 개발된 치킨라멘부터 최근 나온 신제품 라면인 라오(라왕)까지 수천 종의 라면이 전시돼 있다.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멘인 치킨라멘은 음식문화의 혁명을 불러일으킨 발명품이었다. 안도 회장이 치킨 라멘을 처음 출시한 때는 1958년. 일본제국주의가 패망한 후 미군정 밑에서 전후 복구에 몰두하던 시기였다. 6·25전쟁의 여파로 일본 경제가 활성화되기 시작했지만 일반 서민들의 삶은 팍팍하기 그지없었다. 쌀이 부족해서 미국이 원조한 밀가루로 끼니를 연명하던 시기였다. 안도 회장은 일본인의 입맛에 맞으면서도 물만 있으면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즉석 식품 개발에 도전했다. 1년 넘게 다양한 방법으로 즉석 식품을 만들었지만 실패를 거듭했다. 개발비마저 바닥을 보일 즈음 우연히 아내가 튀김을 하는 것을 보고 국수를 기름에 튀겨봤다. 기름에 튀긴 면은 의외로 맛이 좋고 장기간 보관해도 수분이 빠진 상태라 상하지 않았다.

안도 회장은 닭고기 육수를 분말 형태로 해서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라면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은 출시되자마자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이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는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인스턴트 라면은 워크맨, 가라오케 등과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발명품으로 타임스에 오르기도 했다. 2018년 10월에는 안도 회장의 성공스토리를 다룬 드라마 만푸쿠(滿腹)가 NHK방송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라멘 박물관은 단순한 라멘 이야기를 뛰어넘어 기업가가 어떤 정신으로 경영을 하고 고난을 헤쳐나가는지 알 수 있는 경제 교육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컵라면 만들기 체험도 흥미롭다. 컵라면 용기에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고 스프와 토핑 재료를 선택하면 건조된 라멘에 재료를 넣어 밀봉해서 체험자에게 돌려준다. 그야말로 나만의 컵라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눈부시고 화려한 야경 요코하마 관광의 백미

요코하마 관광의 백미는 야경이다. 일본에 수많은 야경 명소가 있지만 요코하마 야경은 3대 야경이니 5대 야경이니 하는 순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요코하마 야경은 이미 다른 야경지의 수준을 넘어섰다고 요코하마 사람들은 자랑한다. 요코하마 사람들의 자부심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야경을 보면 놀랄 만큼 눈부시다.

요코하마의 야경 포인트 중 한 곳은 70층짜리 랜드마크타워에서 관람하는 것이다. 랜드마크타워는 미국 건축가 휴 스티븐스의 설계로 1993년 지어진 296m 초고층 빌딩이다. 오사카의 아베노 하루카스(300m)가 건설되기 전까지 일본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빠른 엘리베이터로 약 40초(분속 740m) 만에 69층 전망대에 오르면 요코하마의 전경이 360도로 펼쳐진다. 전망대는 오후 5시부터 야경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한다. 저마다 삼각대를 걸쳐놓고 요코하마항과 도쿄 도심까지 알록달록하게 펼쳐진 색의 향연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자리 다툼을 벌인다. 요코하마항쪽 풍경도 빼어나지만 후지산을 중심으로 서서히 지는 낙조는 한 폭의 그림처럼 매력적이다.

랜드마크타워 바로 옆에는 160여 개의 상점과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는 대형 쇼핑몰인 랜드마크플라자가 있다. 해외 유명 브랜드와 일본 디자이너 편집숍이 들어서 있다. 랜드마크플라자 옆에는 로마 원형경기장처럼 생긴 도크야드가든이 이채롭다. 원래 이곳은 1896년에 선박 및 항만 관련 시설 정비용 도크로 지어진 곳이다. 선박들이 점차 대형화되면서 조선소가 옮겨갔고, 제기능을 상실했다가 1995년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현재 모습으로 복원됐다.

야경을 찍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명소는 아카렌가 창고에서 멀지 않은 요코하마항 오산바시에서 미나토미라이지구를 바라보는 풍경이다. 고층 빌딩들이 일제히 불을 밝히고 대관람차가 시간대에 맞춰 돌아가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빛의 축제가 펼쳐진다. 이곳이 야경천국 요코하마다.

요코하마=글·사진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여행 메모

요코하마로 가려면 도쿄 하네다공항, 나리타공항에서 모두 들어갈 수 있지만 하네다공항이 훨씬 가깝기 때문에 대부분 하네다공항을 이용한다. 도쿄에서 요코하마까지는 전철로 30분 정도 걸린다. 신주쿠역이나 시나가와역 신바시역 등에서 요코하마행 JR전철과 사철이 여러 편 있다. 도쿄전철의 모든 역에서 요코하마까지 1회 왕복할 수 있고 미나토미라이선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미나토미라이 티켓’을 이용하면 경제적으로 요코하마 여행을 할 수 있다. 1일권이 860엔이다. 가족여행객이라면 수족관과 놀이시설이 결합한 ‘시파라’(시파라다이스)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은 어떨까? 바다코끼리와 바다사자, 돌고래가 펼치는 쇼가 볼 만하고 낚시체험도 할 수 있다. 어트랙션도 갖추고 있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곳이다. 요코하마 관광컨벤션뷰로 홈페이지에 자세한 관광정보가 담겨 있다.

취재 협조=공익재단법인 요코하마 관광컨벤션뷰로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