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다산북카페에서 열린 《현남오빠에게》 출간 간담회에서 김이설(왼쪽부터), 조남주, 최정화 작가가 집필 소회를 이야기하고 있다.  /다산책방 제공
13일 서울 다산북카페에서 열린 《현남오빠에게》 출간 간담회에서 김이설(왼쪽부터), 조남주, 최정화 작가가 집필 소회를 이야기하고 있다. /다산책방 제공
“최근 페미니즘 담론이 자주 등장하는데도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성차별은 여전하다는 자조가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예전에는 별 것 아니라 여겼던 부당함에 대해 여성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공론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에서 저는 희망을 봅니다. 앞으로도 계속 우리의 이야기를 할 수 있길 바랍니다.”(조남주 작가)

국내 첫 페미니즘 단편소설집 '현남오빠에게' 출간
주목받는 여성 작가 7명이 모여 ‘페미니즘 소설집’ 《현남오빠에게》(다산책방)를 출간했다. 《82년생 김지영》으로 올해 페미니즘 이슈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기폭제 역할을 한 조남주 작가를 비롯해 최은영 손보미 김이설 최정화 구병모 김성중 등 3040 여성 작가가 뭉쳤다.

서점가에 페미니즘 에세이나 이론서는 많지만 페미니즘 단편 소설집이 나온 것은 국내 최초다. 13일 서울 마포구 다산북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이설 작가는 “‘2017년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얘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계몽자나 전사의 역할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비슷한 처지의 여성에게 연대 손길을 내밀고 다른 이들에겐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어요. 소설이라는 장르가 페미니즘을 더 쉽게, 더 다양한 계층에 전달할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책 표제작인 조 작가의 ‘현남 오빠에게’는 스무 살부터 10년을 사귄 남자친구 현남의 청혼을 거절하며 쓴 편지글이다. 편지 속 화자는 현남이 어떻게 10년 동안 자신을 존중하는 대신 소유물로 여기며 점심 메뉴부터 친구 사이, 화자의 진로까지 좌지우지했는지 폭로한다.

“시사프로그램 작가 일을 할 때 10년 넘게 가정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을 만난 적이 있어요. 사회적 위치도 있고 경제력도 있는데 피해자는 왜 그 상황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했는지 의문이 저를 떠나지 않았죠. 그 사건을 모티브로 이 소설을 썼습니다. ‘가스라이팅(타인의 마음을 교묘하게 통제하는 행위)’을 다룬 책 《가스등 이펙트》와 《꽃이 아니다, 우리는 목소리다》라는 책에 나온 사례도 참고했습니다.”(조 작가)

현남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을 깨달은 화자는 “강현남, 이 개자식아!”라고 편지를 끝맺으며 주체적으로 살아갈 것을 선언한다. 조 작가는 “이 소설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쓴 문장이 이 마지막 문장이었다”고 설명했다. 부당한 사회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았던 《82년생 김지영》의 지영보다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 현실 앞에 당당히 마주서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려 한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메시지를 강조하느라 문학적 완결성은 뒤로 미뤄진 것 아니냐는 질문도 나왔다. 이에 대해 조 작가는 “메시지를 잘 전달하면서 문학적 완성도가 있는 글을 쓰기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며 “촌스럽고 문학적이지 못할지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82년생 김지영》 열풍 현상’에 대해선 “우리가 갖고 있던 문제의식을 겉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기폭제 역할을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작품에 참여한 작가들은 “이 소설이 페미니즘을 앞세웠다고 해서 남성들과 싸우자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이설 작가는 “소설을 읽으며 서로 날 세우기보단 서로의 아픔을 가만히 쓰다듬는 시간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