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까지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에서 공연하는 창극 ‘레이디 맥베스’.
30일까지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에서 공연하는 창극 ‘레이디 맥베스’.
‘판소리 하는 맥베스 부인’을 끝까지 기다렸다.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공연 중인 창극 ‘레이디 맥베스’를 보면서다. 하지만 이런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국립국악원 기획 공연인 이 작품은 연출가 한태숙 씨가 자신의 대표작인 동명 연극을 창극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선보이는 무대다. 극의 중심은 맥베스 부인이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에서 권력을 좇고 탐닉하다 파멸에 이르는 맥베스 부인의 내면에 초점을 맞춰 재창작했다. 1998년 초연 당시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에 대한 도발적이고 참신한 해석으로 주목받은 작품이다.

판소리가 지닌 한(恨)의 정서와 서사의 힘으로 맥베스 부인의 권력욕과 죄의식, 회한과 비탄을 어떻게 이끌어낼지 궁금했다. 내심 역대 최고 ‘광란 신’으로 꼽히는 베르디 오페라 ‘맥베스’의 몽유병 장면에서 맥베스 부인이 부르는 감동적인 아리아 ‘아직도 여기 핏자국이(Una maccia)’의 판소리 버전을 기대했다.

그런데 타이틀 롤을 맡은 소리꾼 정은혜는 판소리를 하지 않는다. 여러 대목에서 노래를 부르기는 하지만 단지 ‘국악풍의 노래’일 뿐이다. 자신의 장기인 소리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노래와 대사의 이음새는 서양 뮤지컬 어법에 가깝다. 노래의 감동이 약했다. 소리는 극의 해설자 역할을 하는 도창만이 간간이 한다.

도창 역의 염경애는 극중 “도창뿐 아니라 음향도 하라니”란 대사와 함께 쇳소리를 낸다. 음악의 역할도 그렇다. 가야금과 피리, 타악, 콘트라베이스로 구성된 연주단은 라이브로 음향 효과를 내는 데 치중한다. 소리꾼인 도창은 시종과 함께 판소리가 아니라 고상한 정가(正歌)를 부르기도 한다. 음악으로 보자면 창극이 아니라 다양한 전통음악에 현대음악의 어법이 가미된 퓨전국악극이다.

현대 연극이나 총체극의 관점에서 보면 꽤 완성도 높은 무대라 할 만하다. 오브제(사물)를 활용한 연출가 특유의 무대미학이 도드라진다. 무대 한 옆에 세워진 5m 높이의 하얀 벽판에 숯을 개어 만든 재료를 사용해 배우들이 몸으로 그리며 극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압권이다.

정은혜는 소리가 아니라 연기로 돋보였다. 전문 배우 못지않은 몰입을 보여준다. 맥베스와 궁중의사 1인2역을 하는 베테랑 정동환의 훌륭한 발성과 발음을 자연 음향이 뛰어난 공연장에서 듣는 것은 연극팬에겐 축복이다.

음악도 총체극의 한 요소로서는 제 역할을 다한다. 다만 창극을 기대했다면, 맥베스 부인의 깊은 절규와 판소리의 힘이 융합해 뿜어져 나왔을 폭발적 에너지를 기대했다면 크게 실망할 수 있겠다. 30일까지, 3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