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구경 - 김기택(1957~)

[이 아침의 시] 원숭이 구경 - 김기택(1957~)
원숭이 피는 원숭이 핏줄에서 돈다
콧구멍 뚫린 큰 주둥이를 갸웃거리게 하고
긴 팔을 늘어뜨리게 하고 열매처럼 대롱대롱
나무에 매달려 흔들리다가 느닷없이 이 가지로
저 가지로 공이 튀듯 옮겨다니게 한다
웃는 아이의 눈 속에서 원숭이는 즐겁다
똥구멍을 빨갛게 만드는 원숭이 신기한 피가
아이의 빨간 심장에서 따뜻하다 긴 팔을 뻗어
아이는 높은 나뭇가지에 매달리고 싶다
이 나무 저 나무로 껑충껑충 날고 싶다
한 가지 표정만 가지고 온종일 웃고 싶다
외줄 위에 편안하게 앉아서 졸고 싶다
따뜻한 털도 만들 줄 모르고 꼬리도 세울 줄 모르는
사람의 피가 도는 아이의 하얀 얼굴
웃을 때마다 원숭이 피가 돌 것처럼
침 흘리며 벌어지는 입 들썩거리는 엉덩이
시집 《태아의 잠》(문학과지성사) 中


원숭이는 공이 튀듯 옮겨 다닙니다. 그 탄력은 바로 원숭이 몸속에 흐르는 피 때문이겠지요. 원숭이의 신기한 피 때문에 아이의 눈 속에서 원숭이는 즐거워합니다. 원숭이가 움켜쥔 2016년의 해가 높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 햇볕을 쬐고 있으면 새로운 피가 돌고 있는 느낌입니다. 엉덩이를 빨갛게 만드는 원숭이를 보고 온종일 웃고 싶은 아침입니다.

이소연 시인(2014 한경 청년신춘문예 당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