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전문지인 ''아트 인 컬처''가 최근 미술평론가 큐레이터 2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여 1950년대 이후 한국의 대표작가 10명을 발표한 바 있다.

21명의 평론가 중 내고(乃古) 박생광(1904∼1985) 화백이 8표를 얻어 단연 1위를 차지했다.

내고는 1970년대까지 한국화단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다.

민족 미술 재건운동이 펼쳐지던 해방전후에는 그의 그림에 일본 냄새가 배어있다고 배척까지 받았었다.

그러던 그가 우리 화단에서 눈길을 끈 것은 1981년부터다.

그 해 4월 국립현대미술관 주최 ''한국미술 81년전''에 ''극락정토와 청담조사''를 출품한데 이어 5월에 백상기념관에서 개인전을 열어 한국성을 인정 받았다.

그 때까지 그의 색채 작업을 일본화의 그루터기로 밖에 봐주지 않았던 비평가들이 한층 강렬해진 원색 표현의 무속화 불화 성격 대작과 역사적 인물상을 민족적 그림으로,내고가 구사한 원색도 일본 색깔이 아닌 우리 토방색으로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

1981년 10월에는 제7회 중앙문화대상(미술부문)을 받고 ''그대로''라는 순한글 호를 쓰기 시작했다.

''그대로''가 한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지만 세계 미술계의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그가 타계한 1985년이다.

1984년 4월에 한국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대작 중심의 작품전을 열어 한국화단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10월에 프랑스 미술협회 도트리브 회장이 서울을 방문해 1985년 르살롱전 특별 초대 작가 결정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의 장난인가.

박 화백은 당시 후두암을 앓고 있었다.

그는 암과 싸우면서 무속화 연작 8점을 완성하고 드디어 1985년 5월 파리 르살롱전 특별전에 20여점을 출품,세계 미술계에 우뚝 섰다.

이번에 소개하는 ''무당-3''(종이에 수묵채색,136?137㎝)은 바로 르살롱전 포스터로 선정 됐던 그림이다.

이 작품은 한국에서 보다 프랑스에서 더 잘 알려져 있다.

오른쪽에 삼신선(三神煽)을 펴들고 고축(신명에게 비는 것)을 하며 방울을 흔드는 무당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그 앞쪽에는 흰 고깔을 쓴 여자 무당이 둘이나 보인다.

그림의 하단에 배치된 돼지머리라든가 그림 상단부에 보이는 기와지붕의 모습이라든가 그밖에도 민화적인 갖가지 도상이 여기저기 드러나 있다.

얼른 서양화의 콜라주 기법이 연상 되지만 이 그림에서는 어디까지나 장식적인 특성을 강화하기 위한 게 아닌가 여겨진다.

이 작품은 우리 무속을 실감있게 표현한 토속 미술이기도 하다.

< 월간 아트인컬처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