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은 2015년에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직을 사임한 뒤 더 이상 특정 오케스트라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초대 수석객원지휘자(2012년부터)와 라 스칼라 필하모닉의 초대 명예음악감독(2023년부터),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명예음악감독(2015년부터) 등의 명예직은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 내게 ‘정명훈씨는 요즘 뭐 하시냐’고 묻는 분들이 있어서 이 자리를 빌어 간단히 정리해 봤다.정명훈은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쿄필)와도 특별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2001년 이래 이 오케스트라의 특별 예술고문으로 있으며, 2016년에는 명예음악감독 직위가 추가되었다. 서울시향을 떠난 직후에 이런 영예를 얻게 되어 지휘자 입장에서도 느낌이 남달랐을 것이다. 이런 귀한 인연에도 불구하고 정명훈과 도쿄필의 내한공연은 생각보다 무척 드물어서, 양자가 정식 단독 투어로 서울을 찾아온 것은 2005년 이후 19년 만의 일이다. 참으로 오래간만의 일인 만큼, 얼마나 준비를 철저히 한 무대일까 궁금해하며 공연을 참관했다.베토벤의 작품으로만 채운 이번 공연에서 첫 곡은 ‘삼중 협주곡’이었다. 정명훈이 피아노를 겸해 연주했는데, 고전주의 시대 피아노 협주곡에서 지휘자가 피아노를 겸해 연주하는 일은 꽤 흔하지만 이 곡에서 그렇게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화제가 될 법했다. 정명훈은 지휘자로서뿐만 아니라 피아니스트로도 나머지 두 사람을 충실하게 뒷받침했고,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와 첼리스트 문태국은 서로 훌륭하게 조화를 이뤘다. 그윽한 첼로 선율로 시작한 2악장
“현실은 냄새나고 더럽죠. 그리고 단순한 결말로 끝나지도 않아요.”당위가 늘 행위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때가 많다. 앞장서 나서기 두렵다거나, 얻을 게 없다거나, 애써 이룬 것을 포기해야 한다거나. 변명거리야 여러 가지다. 무모해 보이는 용기를 연결고리 삼아 당위를 행위로 증명해낸 이들이 시간을 초월해 기억되는 까닭이다. 그리고 “10만 명이 죽었다!”라고 외치며 미술관에 드러누운 예술가 낸 골딘(71)이 이를 몸소 보여준 고결한 인간으로 존경받는 이유다.15일 개봉하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현대 사진예술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거장 골딘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동시대 미술에서 골딘은 저명한 사진가다. 에이즈 환자나 마약 중독자, 매춘부, 성소수자 같은 감춰져 있던 ‘터부’를 찍어 시대를 표현한 개념과 슬라이드쇼로 풀어낸 독창적 기법은 왕가위, 자비에 돌란 같은 예술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과 유럽 유수의 현대미술관 중 그의 작품을 소장하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개인의 삶을 필름에 담아 스크린으로 소개할 만큼 골딘의 예술적 성취가 뛰어나단 뜻이다.하지만 만약 영화가 골딘의 예술적 면모를 조명하는 데 그쳤다면, 그저 그런 전기 다큐멘터리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이 낸 골딘을 알든 모르든 간에 영화는 매력적이다”란 평가를 받고, 제79회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것은 영화가 낸 골딘이 겪은 삶과 투쟁, 생존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예술가의 빛나는 업적이 아닌, 불
검정색은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다. 죽음에 대한 애도와 슬픔, 쇠퇴나 활력의 부재, 좌절, 두려움, 공포 등을 상징하는 색이면서도 동시에 위엄과 품위, 존엄, 사치, 우아함 등을 나타내기도 한다.서울 팔판동의 한옥 ‘호호재(蝴蝴齋)’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블랙 메이(Black May)’는 검정을 대하는 다양한 감성을 다룬다. 다양한 장르의 작가 14명이 가옥을 '검은 전시관'으로 탈바꿈시킨다.김명범 작가는 사물의 독특한 조합으로 색다른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이성미 작가는 반복적 그을음을 통해 기억의 풍경을 수행한다. 전아현 작가는 독특한 소재로 자연을 재현한다. 유남권 작가는 전통 옻칠 기법을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인다. 21세기 버전의 미인도를 그려내는 최혜숙 작가와 마루를 직조하는 구상우, 와이어메시와 로프 의자로 독특한 디테일을 만드는 김기드온 작가도 전시에 참여한다.이유진 작가는 신체를 캐스팅해 여성적 감수성을 독특한 미학으로 풀어낸다. 한정현 작가와 김자영 작가는 각각 버려지는 사물을 재활용하고, 기억의 퇴적을 흙으로 조형한다. 이정교 작가는 정체불명의 오브제와 인공지능(AI)의 알고리즘을 암각화로 풀어낸 회화를 선보인다.이종원 작가는 고인돌에 영감을 받아 현대적 폐기물로 가구를 만든다. 기와를 다양한 형태로 해석하고 건축과 가구를 함께 디자인하는 최준우 작가와 숯을 공간에 매달아 장소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박선기 작가도 있다.전시는 이달 11일부터 31일까지 열린다.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