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춘추(56)씨가 새 시집 "산 속의 섬"(현대시)을 펴냈다.

김씨는 1998년 오십이 넘은 나이에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뒤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시인"이다.

시집도 벌써 네번째다.

한때 문학의 꿈을 접고 의과대학으로 진학했던 그가 인술로 환자들을 치료
하다 드디어 시의 빛으로 세상을 밝히고 있다.

그는 현재 가톨릭의대 교수이자 가톨릭 조혈모세포이식센터소장이다.

혈액종양학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시가 맑고 천진한 것은 생명의 밑바닥까지 닿아본 사람만이 만져볼 수
있는 삶의 뿌리 때문일 것이다.

첫시집 "요셉병동"과 두번째 시집 "하늘 목장"을 통해 그는 생명과 자연의
외경을 천진스러운 시어로 노래했다.

"얼음 울음"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넉넉하게 바라보는 관조의 미학, 독특한 상상력과 유머감각이 그의
시를 신선하게 만드는 묘약이다.

이번 시집에서는 어법이 더욱 자유로워졌다.

시인은 어린 아이나 늙은 누이, 바다의 해파리와 경계없이 대화를 나눈다.

"아가/저기 저/아파트벽 보이니/그 속의 모래도 보이지//저게 다 우리
고향이었단다"("모래무지" 부분)

"누이야/세월도 모르게 쌓아 둔/그 긴/그리움의 높이에서/눈은 자꾸만
내리고 있다//귀밑까지/하얀 누이야"("강설기" 전문)

"이제, 색계를/넘어 밤이면 밤마다/이승 저승 다 비춰주는/연등이 되셨구려"
("해파리" 부분)

그는 약간 비켜선 자세로 길고 긴 시간의 풍화작용을 관찰한다.

때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소중함도 일깨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면, 섬과 섬 사이에는/등대가 있다"로 시작되는
시 "등대"에서 그는 "아직도 생선기름으로 불 밝히는/나의 구식 등대불은/
만월에 반딧불 같아/형광등 등불이 눈에 익은/그대 눈에는 보이지 않으리라"
고 말한다.

그의 시는 행과 연을 특별히 나누지 않아도 리듬을 잘 탄다.

정해진 음수율이 아니라 또다른 내재율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띄어쓰기 없이 엮은 작품들이 맛있게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달덩이같이뽀오얀비구니가/복숭아밭에서몰래소피를볼/때때마침지나가던둥
근달이/털이보숭보숭한복숭아와박/덩이처럼잘익은엉덩이를보/고또보고웃다가
기어이턱이/빠져목구멍목젖까지환하다"("풍경" 전문)

이번 시집은 "현대시 CD롬 시집" 가운데 하나다.

활자본 외에 4대 PC통신을 통해 전자북 형태로도 판매된다.

< 고두현 기자 kd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