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신인감독을 발견하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데뷔작 "악어"로 충무로에 첫선을 보인 김기덕감독.

그는 자본이나 주연배우의 이름에 의존하지 않고 제작비 3억5,000만원으로
깔끔한 수작을 빚어냈다.

"악어"는 한강변에 천막을 치고 사는 떠돌이를 통해 우리사회의 명암을
적나라하게 비춘 작품.

주인공은 자살한 시체를 숨겼다 유가족들로부터 사례금을 받아 생활하는
악어(조재현).

어느날 집단강간의 충격으로 강물에 뛰어든 현정(우윤경)을 살려내 성적
도구로 이용하던 그는 그녀의 사연을 알고 대신 복수에 나선다.

우여곡절끝에 한강으로 돌아온 현정은 악어의 이름을 따뜻하게 부르고
악어도 처음 느끼는 사랑에 눈물짓는다.

그러나 늦게 발견한 사랑은 비극으로 치닫고.

단순한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엮어낸 감독의 역량이 작품의 안정성과
완성도를 높여준다.

극의 흐름을 조율,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관객과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냉철함도 돋보인다.

눈길을 끄는 것은 회화적인 기법.

동적인 영상과 정적인 그림을 조화시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악어의 천막뒤에 보이는 대형벽화나 강물속 벽면에 걸린 액자를 통해
현실과 꿈을 대비시킨 것이 한 예.

눈물과 해학의 접목 또한 뛰어나다.

악어의 거침없는 언행때문에 웃다보면 어느새 콧등이 찡해진다.

앵벌이소년이 악한들의 꾐에 빠져 장난감인줄 알고 쏜 총에 우노인이
희생당하는 장면이나, 현정과 동반자살하기 위해 물에 들어간 악어가 마지막
순간 살고 싶어 엄지손가락을 끊고 수갑을 벗기려 몸부림치는 장면은
비극미를 더한다.

아쉬움도 있다.

악어의 "거울"인 현정의 역할이 너무 단순하게 설정돼 있고 대사도 잘
들리지 않는다.

우노인이 악어에게 설교를 늘어놓는 것도 사족이다.

(명보 동아 브로드웨이 롯데월드 오픈시네마 영화마당 상영중)

< 고두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