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감독의 데뷔작은 의욕에 비해 뒷심이 부족하기 쉽다.

오일환감독의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도 다양한 시도만큼 주제의식이
뒷받침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이 영화는 현대인의 일탈된 욕망을 가벼운 터치로 그린 것.

기존 가치를 뒤집고 혼돈속의 새 질서를 추구하는 "재즈"가 기본
모티브다.

장정일 소설이 원작.

장정일은 지난해 자전소설 "개인기록"에서 자신의 재즈적인 글쓰기가
"아버지에 대한 부정"에서 비롯됐다고 고백했다.

소설속에서 시간과 공간, 문장이 서로 뒤틀리는 것도 이때문.

이같은 묘미를 경쾌한 이미지로 전달하려는 감독의 의도는 좋았으나
안타깝게도 작품의 깊이가 따라주지 못했다.

기업체 말단사원인 주인공(김승우)은 첫사랑인 처제(임상효)를
잊지 못해 늘 허방다리를 짚으며 아내(방은진)에게 핀잔을 듣는다.

원작의 반지하 단칸방이 영화에서 화려한 아파트로 바뀌었는데 이
부분은 주인공의 의식공간을 지상으로 이동시켜 주제를 흐리게 했다.

일요일마다 테니스연습 상대로 그를 불러내던 직장상사 남부장(명계남)이
난데없이 쓰레기줄이기 캠페인을 벌이는 것도 필연성이 부족하다.

남부장이 구원의 영역으로 설정한 재즈교회는 중세의 밀교사원처럼
사실성이 약하다.

카메라는 등장인물들의 고뇌보다 일상의 표면만을 허겁지겁 훑고
지나간다.

이 가벼움은 재즈의 본령을 빗겨가며 어지러운 정황들을 서둘러
봉합하고 말았다는 아쉬움을 준다.

영화는 그가 도시의 소음을 뒤로 하고 강물위에 표류하는 결말부분에서도
머뭇거린다.

만삭인 아내를 두고 스티로폴 위에 떠가는 그.

소외된 현대인의 고뇌가 축약된 이 장면을 좀더 밀도있게 그렸다면
완성도가 훨씬 나아졌을 것이다.

이 영화의 버팀목은 방은진의 그악스러우면서도 농익은 연기.

그녀의 노련함은 "한 침대에 세 사람이 누운" 불균형 구도에 아슬아슬한
추로 작용하며 작품에 생명선을 제공했다.

(명보 브로드웨이 씨네하우스 새서울극장 상영중)

< 고두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