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템만 좋으면 뜰 거라 착각"…스타 창업자 10인의 실패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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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 한경 GEEKS
성공 스타트업도 수차례 쓴맛
(1) 경쟁사 진입 예상 못해
(2) 인기와 수익은 달랐다
(3) 이용자들 마음 몰랐다
성공 스타트업도 수차례 쓴맛
(1) 경쟁사 진입 예상 못해
(2) 인기와 수익은 달랐다
(3) 이용자들 마음 몰랐다
스타트업의 성공 신화는 널리 알려진다. 배달의민족(우아한형제들)은 길거리 전단 모으기부터 시작해 국내 1위 음식 배달 플랫폼이 됐다. 김봉진 창업자의 독창적인 브랜드 마케팅 등이 더해진 결과다.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유통업계를 뒤흔들며 한국의 아마존으로 성장했다. 간편 송금 서비스 등으로 금융시장을 혁신한 비바리퍼블리카(토스)도 빼놓을 수 없다.
이 같은 성공 신화 뒤에는 실패 스토리도 있다. 창업자의 좌절 경험은 성공을 위한 밑바탕이 되기도 했다. 스타트업의 본질도 수많은 실패를 보완해 가며 성공 방정식을 풀어가는 것이다. 혁신적 기술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업 타이밍이 좋지 않아 실패하기도 하고, 법률이나 규제 문제에 부닥쳐 좌절하는 사례도 있다. 국내 스타트업업계에서 활약하는 창업가 10인의 실패담을 인터뷰 등을 통해 분석해 봤다.
2013년에는 모바일 투표 앱 다보트를 출시했다. 이마저도 카카오가 비슷한 기능을 카카오톡에 추가하면서 또다시 사업을 접었다. 이후 100개가 넘는 아이템 가운데 팀원 투표와 프로토타입(시제품) 개발 등을 통해 복잡한 인터넷쇼핑 결제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온 서비스가 토스다.
이수진 야놀자 대표도 실패 이력이 있다. 그는 젊은 시절 모은 4000만원의 종잣돈으로 2000년대 초 샐러드 배달회사를 세웠다. 하지만 건강식에 대한 관심이 큰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샐러드 배달이 보편적인 서비스가 아니었다. 이 대표는 샐러드에 대한 기본 지식도 없었다. 그는 “너무 쉽게 생각하고 시작한 것들이 현실 장벽에 부딪혔다”며 “적어도 무엇을 어떻게 진행하겠다는 가설과 로드맵을 실천할 역량이 있을 때 창업에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채용시장에서 주목받는 평판 조회 플랫폼 스펙터를 운영하는 윤경욱 대표도 실패 경험이 있다. 그는 2015년 공동구매 플랫폼 타운어스를 출시했다. 대학 등을 중심으로 맞춤형 단체복을 팔았다. 하지만 2020년 초 시작된 코로나19 확산의 직격탄을 맞았다. 단체활동이 줄어들면서 수요가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사업 확장을 기대하고 채용을 늘린 것도 문제였다. 타운어스는 매출의 25%가 중국에서 나왔지만 현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서비스 확대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개인 간 거래(P2P) 대출 서비스로 유명한 렌딧의 김성준 대표는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 시절 패션 커머스 플랫폼 스타일세즈를 선보였다. 창업 초기에는 적잖은 주목을 받았다. 실리콘밸리에서 유명한 투자사 가운데 하나인 앤드리슨호로위츠에서 인수 제안이 올 정도였다.
하지만 스타일세즈는 미국 특유의 물류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 서비스였다. 미국은 배송료가 비쌀 뿐만 아니라 거리에 따라 배송되기까지 1주일 이상 걸리기도 했다. 구매 한 달 안에는 무조건 반품을 보장해야 하는 것도 걸림돌이었다. 작은 규모로 시작했을 때는 괜찮았지만 서비스를 확장하면서 늦은 배송과 반품 문제 등에 대한 고객 불만이 늘어나면서 사업을 접어야 했다.
침대 매트리스 시장을 혁신하고 있는 삼분의일의 전주훈 대표 역시 여러 차례 창업에 실패했다. 삼분의일을 창업하게 된 계기도 “사업이 어려울 때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수면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 대표는 잇단 레스토랑사업 실패에 이어 2015년 가사도우미 플랫폼 홈클을 내놨으나 또다시 실패했다. 그는 ‘홈클의 흥망성쇠’라는 글을 통해 “사명감이 없다 보니 결연한 의지는 봄날 눈 녹듯 녹아내렸다”고 썼다. 세금과 법률문제도 실패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법적으로 가사도우미는 실사용자가 아닌 중개업자가 임금을 줄 수 없다. 근본적 해결 방안은 가사도우미를 직접 채용하는 것이지만 그러기엔 자금 부담이 컸다.
데이팅 앱 글램을 운영하는 큐피스트의 안재원 대표는 대학 시절 알람 서비스 헬로닝을 창업했다. 원하는 영상이나 소리를 알람으로 만들어 이용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다. 하지만 서비스는 오래가지 못했다. 예상보다 사람들이 많이 쓰지 않았다. 연인들도 알람 같은 사적인 것까지 공유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발견했다. 소셜 알람이란 서비스는 시장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프리랜서마켓 플랫폼 크몽의 박현호 대표는 ‘10전11기’를 겪었다. 박 대표의 가장 뼈아팠던 실패는 2000년대 중반 창업한 온라인게임 아이템 거래 플랫폼이다. 아이디어는 좋았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 게임이 인기를 끌며 국내에서도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열풍이 불던 시기였다. 그러나 생각만큼 이용자가 빠르게 늘지 않았다. 전자상거래 태동기여서 온라인 거래가 활성화하려면 시간이 필요했지만 박 대표는 다급했다. 그는 “조급증 때문에 투자를 늘렸고, 불어난 비용 탓에 운영 자금이 부족했다”며 “악순환이 반복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위조 상품을 AI로 잡아내는 사업을 하는 마크비전의 이인섭 대표도 2017년 여러 서비스를 내놨지만 모두 실패했다. AI를 활용해 물류센터 내부를 카메라로 감시하는 서비스도 출시했다. 하지만 이 대표가 잘 아는 분야가 아니었고, 평소 관심도 없던 아이템이었다. 사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는 “물류센터를 가보거나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과 만난 적도 없었기 때문에 서비스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고 했다.
안정락/김주완/김종우 기자 jran@hankyung.com
이 같은 성공 신화 뒤에는 실패 스토리도 있다. 창업자의 좌절 경험은 성공을 위한 밑바탕이 되기도 했다. 스타트업의 본질도 수많은 실패를 보완해 가며 성공 방정식을 풀어가는 것이다. 혁신적 기술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업 타이밍이 좋지 않아 실패하기도 하고, 법률이나 규제 문제에 부닥쳐 좌절하는 사례도 있다. 국내 스타트업업계에서 활약하는 창업가 10인의 실패담을 인터뷰 등을 통해 분석해 봤다.
거대 경쟁 상대가 등장했다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는 ‘8전9기’로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 신화를 썼다. 8번의 실패 가운데 상당수는 예상치 못한 대형 경쟁자가 등장하면서 사업이 어려워졌다. 이 대표는 2011년 스마트폰 초음파통신을 이용해 오프라인 만남을 기록하는 SNS 울라블라를 내놨다. 지인 관계를 인증하는 서비스 수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비슷한 기능이 내놓으면서 사업을 접어야 했다.2013년에는 모바일 투표 앱 다보트를 출시했다. 이마저도 카카오가 비슷한 기능을 카카오톡에 추가하면서 또다시 사업을 접었다. 이후 100개가 넘는 아이템 가운데 팀원 투표와 프로토타입(시제품) 개발 등을 통해 복잡한 인터넷쇼핑 결제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온 서비스가 토스다.
이수진 야놀자 대표도 실패 이력이 있다. 그는 젊은 시절 모은 4000만원의 종잣돈으로 2000년대 초 샐러드 배달회사를 세웠다. 하지만 건강식에 대한 관심이 큰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샐러드 배달이 보편적인 서비스가 아니었다. 이 대표는 샐러드에 대한 기본 지식도 없었다. 그는 “너무 쉽게 생각하고 시작한 것들이 현실 장벽에 부딪혔다”며 “적어도 무엇을 어떻게 진행하겠다는 가설과 로드맵을 실천할 역량이 있을 때 창업에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채용시장에서 주목받는 평판 조회 플랫폼 스펙터를 운영하는 윤경욱 대표도 실패 경험이 있다. 그는 2015년 공동구매 플랫폼 타운어스를 출시했다. 대학 등을 중심으로 맞춤형 단체복을 팔았다. 하지만 2020년 초 시작된 코로나19 확산의 직격탄을 맞았다. 단체활동이 줄어들면서 수요가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사업 확장을 기대하고 채용을 늘린 것도 문제였다. 타운어스는 매출의 25%가 중국에서 나왔지만 현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서비스 확대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아이템 좋다고 돈 버는 건 아니다
이진열 한국시니어연구소 대표는 2013~2018년 팬덤 서비스 마이돌을 운영했다. 스타와 가상으로 대화하는 휴대폰 잠금화면이란 아이템이 주목받으며 사업 초기 이용자가 급증했다. 하지만 갈수록 성장은 더뎠다. 이 대표는 “엔터테인먼트산업이 지금은 잘나가지만 당시 환경은 정말 척박했다”며 “연예기획사 대표들이 프레젠테이션 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복잡한 지분 구조 문제도 있었다”고 말했다. 마이돌의 누적 다운로드는 1400만 건에 달했지만 하이브의 ‘위버스’ 같은 비즈니스모델도 찾지 못했다.개인 간 거래(P2P) 대출 서비스로 유명한 렌딧의 김성준 대표는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 시절 패션 커머스 플랫폼 스타일세즈를 선보였다. 창업 초기에는 적잖은 주목을 받았다. 실리콘밸리에서 유명한 투자사 가운데 하나인 앤드리슨호로위츠에서 인수 제안이 올 정도였다.
하지만 스타일세즈는 미국 특유의 물류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 서비스였다. 미국은 배송료가 비쌀 뿐만 아니라 거리에 따라 배송되기까지 1주일 이상 걸리기도 했다. 구매 한 달 안에는 무조건 반품을 보장해야 하는 것도 걸림돌이었다. 작은 규모로 시작했을 때는 괜찮았지만 서비스를 확장하면서 늦은 배송과 반품 문제 등에 대한 고객 불만이 늘어나면서 사업을 접어야 했다.
침대 매트리스 시장을 혁신하고 있는 삼분의일의 전주훈 대표 역시 여러 차례 창업에 실패했다. 삼분의일을 창업하게 된 계기도 “사업이 어려울 때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수면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 대표는 잇단 레스토랑사업 실패에 이어 2015년 가사도우미 플랫폼 홈클을 내놨으나 또다시 실패했다. 그는 ‘홈클의 흥망성쇠’라는 글을 통해 “사명감이 없다 보니 결연한 의지는 봄날 눈 녹듯 녹아내렸다”고 썼다. 세금과 법률문제도 실패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법적으로 가사도우미는 실사용자가 아닌 중개업자가 임금을 줄 수 없다. 근본적 해결 방안은 가사도우미를 직접 채용하는 것이지만 그러기엔 자금 부담이 컸다.
이용자 성향 파악 제대로 못 해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마인드로직의 김용우 대표는 2013~2015년 창업 실패를 겪었다. 스마트폰으로 소설을 읽고 쓸 수 있는 플랫폼인 스토리팝을 내놨지만 젊은 세대들의 호응이 많지 않았다. 김 대표는 “당시 스마트폰 이용자들은 간단한 작업만 했다”며 “캐릭터를 쉽게 만들도록 도와주는 기능 등을 넣어도 사용자가 늘지 않았다”고 말했다. 소수 고객을 무시한 것도 문제였다. 김 대표는 “당시 BTS 팬픽이 플랫폼에서 소수 사용자의 호응을 얻었다”며 “마니아들만 있는 작은 시장이라고 봤는데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했다.데이팅 앱 글램을 운영하는 큐피스트의 안재원 대표는 대학 시절 알람 서비스 헬로닝을 창업했다. 원하는 영상이나 소리를 알람으로 만들어 이용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다. 하지만 서비스는 오래가지 못했다. 예상보다 사람들이 많이 쓰지 않았다. 연인들도 알람 같은 사적인 것까지 공유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발견했다. 소셜 알람이란 서비스는 시장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프리랜서마켓 플랫폼 크몽의 박현호 대표는 ‘10전11기’를 겪었다. 박 대표의 가장 뼈아팠던 실패는 2000년대 중반 창업한 온라인게임 아이템 거래 플랫폼이다. 아이디어는 좋았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 게임이 인기를 끌며 국내에서도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열풍이 불던 시기였다. 그러나 생각만큼 이용자가 빠르게 늘지 않았다. 전자상거래 태동기여서 온라인 거래가 활성화하려면 시간이 필요했지만 박 대표는 다급했다. 그는 “조급증 때문에 투자를 늘렸고, 불어난 비용 탓에 운영 자금이 부족했다”며 “악순환이 반복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위조 상품을 AI로 잡아내는 사업을 하는 마크비전의 이인섭 대표도 2017년 여러 서비스를 내놨지만 모두 실패했다. AI를 활용해 물류센터 내부를 카메라로 감시하는 서비스도 출시했다. 하지만 이 대표가 잘 아는 분야가 아니었고, 평소 관심도 없던 아이템이었다. 사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는 “물류센터를 가보거나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과 만난 적도 없었기 때문에 서비스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고 했다.
안정락/김주완/김종우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