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증권은 7일 유망할 것으로 기대되는 바이오 기술로 리보핵산(RNA)과 이중항체, 유전자치료제, 단백질 분해(프로탁) 등 4가지를 제시했다. 지난해 기술계약 규모가 1조원 이상인 대형 제약사(빅파마)의 거래 사례를 분석한 결과다.

김태희 연구원은 “최근 제약·바이오 업계는 중소 바이오기업(바이오텍)으로부터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빅파마가 이를 도입해 임상과 판매를 담당하는 방식으로 역할이 양분화되고 있다”며 “지난해 빅파마가 바이오텍으로부터 기술 도입에 투자한 금액은 1500억달러가 넘는다”고 말했다.
질환별 거래 비중 및 기술별 거래 금액 / 자료 제공=KB증권
질환별 거래 비중 및 기술별 거래 금액 / 자료 제공=KB증권

빅파마로부터 가장 주목받은 기술은 ‘RNA’

지난해 빅파마가 가장 적극적으로 사들인 기술은 RNA였다.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됐던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이, 코로나19 사태로 1년 만에 출시된데다 효능이 우수해 백신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화이자는 지난달 RNA 관련 기업 3곳과 계약을 맺으며 mRNA 백신 기술을 강화하고 있다. 아퀴타스의 지질나노입자(LNP) 기술과 코덱스DNA의 효소 디옥시리보핵산(DNA) 합성 기술, 빔 테라퓨틱스의 유전자편집 기술을 사들였다. 이를 활용해 독감과 대상포진, 감염 질환 백신을 시작으로 희귀병 및 항암 백신 등에 집중할 예정이다.

특히 RNA간섭(RNAi) 기술에 주목하라는 권고다. 작년 말 노보 노디스크의 다이서나 인수합병, GSK의 애로우헤드 후보물질 도입의 중심에 RNAi 기술이 있었다.

RNAi 치료제는 앨나일람의 ‘온파트로’가 2018년 처음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은 후 매년 한 품목씩 출시되고 있다. 의약품 시장조사기관인 이벨류에이트파마에 따르면 RNAi 관련 시장 규모는 작년 약 7억달러에서 2026년 76억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는 작년 12월 허가받은 ‘렉비오’의 성장에 기인한다. 기존 RNAi 치료제가 주로 희귀병을 대상으로 했다면, 렉비오는 시장이 큰 고콜레스테롤혈증 치료제로 허가받았다. 임상 3상에서 저밀도 지질단백질 콜레스테롤(LDL-C) 수치가 위약 대비 평균 50% 이상 감소했고, 부작용도 심하지 않았다.

약물을 간으로 전달하는 갈낙(GalNAc) 기술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노보 노디스크는 33억달러 규모로 ‘GalXC’ 플랫폼 기술을 보유한 다이서나를 인수했다. GSK가 10억3000만달러에 판권을 도입한 애로우헤드의 비알콜성지방간염(NASH) 후보물질 ‘ARO-HSD’에도 갈낙 기술이 적용됐다.

국내에서는 올릭스가 RNAi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노인성 황반변성 치료제를 프랑스 떼아에 기술이전한 경험이 있다. 갈낙 기술도 확보했다. 현재 유럽 소재 글로벌 기업과 연구개발 공급 계약을 맺고 동물모델에서 효능을 평가 중이다. 상반기 내 기술이전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라고 했다.

이중항체 기술도 관심을 가질 만하다는 판단이다. 최근 수년간 빅파마가 투자한 기술 상위권에 이중항체가 꾸준히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암젠과 얀센, BMS, 사노피 등이 10억달러 이상의 관련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김 연구원은 “그동안 이중항체의 성과는 썩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는데, 로슈의 혈우병 치료제 ‘헴리브라’가 출시 3년 만에 매출 10억달러 이상의 블록버스터로 성장하며 변곡점을 맞았다”며 “최근 유한양행·오스코텍의 신약 ‘렉라자’의 병용 약물인 ‘리브레반트’(성분명 아미반타맙)도 출시됨에 따라 이중항체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작년 하반기부터 이중항체 관련 우수한 임상 결과가 잇달아 발표된 것도 고무적이라고 했다. 특히 암젠의 ‘AMG 757’과 아케소의 ‘AK104’가 각각 소세포폐암과 간세포암 대상 우수한 효능을 보이는 등 고형암에서 효능이 확인되고 있는 것에 주목하라고 했다.

국내에서는 최근 전임상 단계에서 사노피와 1조2700억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한 에이비엘바이오가 유망하다는 판단이다. 김 연구원은 “에이비엘바이오의 이중항체 플랫폼에 어느 항체를 결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후보물질이 도출되기 때문에, 추가 기술이전 가능성도 높다”고 했다.

‘프로탁’에도 관심

유전자치료제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김 연구원은 “유전자치료제는 빅파마가 선호하는 기술이 아니었지만 2017년 스파크 테라퓨틱스의 유전성 망막형성 장애 치료제 ‘룩스터나’가 FDA로부터 첫 번째 유전자치료제로 승인을 받은 후 상황이 바뀌었다”며 “이듬해 사노피와 애브비, 노바티스 등 빅파마가 유전자치료제 시장에 뛰어들었고 대규모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뤄졌다”고 전했다.

유전자치료제에 가장 적극적인 빅파마는 일본 1위 제약사인 다케다다. 2019년부터 스트라이드바이오와 카민 테라퓨틱스, 에보텍 등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했다. 지난해에만 10억달러 이상의 계약을 3건 체결했다. 최근 다케다의 전임상 후보물질(파이프라인) 중 세포·유전자치료제 비중은 37%에 달한다.

국내는 세포유전자치료제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을 인수한 SK와 CJ제일제당에 주목하라고 권고했다. 지난해 SK는 프랑스의 이포스케시를, CJ제일제당은 네덜란드의 바타비아를 인수했다.

단백질 분해 기술인 ‘프로탁’은 새로운 기전과 높은 가능성으로 주목받는 분야라고 했다. 기존 의약품이 질병을 유발하는 단백질을 저해하는 방식이었다면, 프로탁은 질병 단백질을 아예 분해해 질병의 원인을 제거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김 연구원은 “프로탁은 저분자화합물이기에 조직 침투성이 뛰어나고 경구 투여가 가능한 장점이 있다”고 했다.

최근 사람 대상 의미 있는 임상 결과도 발표되기 시작했다. 선두주자는 아비나스다. 작년 12월 아비나스와 화이자는 유방암 치료제 후보물질인 ‘ARV-471’의 진행성 및 전이성 'ER+·HER2-' 유방암 환자 대상 임상 1상에서 임상적 이점 비율(CBR) 40%, 3명의 부분관해(PR) 등의 효능을 확인했다. 4등급 이상의 약물 관련 부작용도 관찰되지 않았다. 아비나스는 올해 2건의 임상 3상 진입을 목표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로이반트에 2억달러를 투자한 SK, 한국화학연구원과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공동 개발한 약물을 확보한 동아에스티, 보로노이와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한 JW중외제약에 주목할 것을 추천했다. 간질환 대상으로 선도물질이 도출된 휴온스, ‘KRAS’ 변이 단백질을 표적하는 나이벡, 단디큐어에 투자한 아이큐어 등에도 관심을 기울일 만하다는 판단이다.

김 연구원은 “다만 국내는 프로탁 기술이 아직 초기 단계”라며 “지금은 국내보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업체에 투자할 것을 추천한다”고 했다.

이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