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수학 선구자는…

"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도
중등학교 시절 수학에 비상
삼성 키운 원동력 됐을 것"
헤이그 특사(왼쪽부터 이준 이상설 이위종).

헤이그 특사(왼쪽부터 이준 이상설 이위종).

구한말 ‘헤이그 특사’ 보재(溥齋) 이상설 선생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독립운동가 이전에 수학자였다. “국력은 과학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일찍 간파해 과학의 기초인 수학 교육에 혼신의 힘을 기울인 선구자다. 헤이그 특사는 일제의 국권 침탈에 맞서 국제사회 도움을 호소하기 위해 고종의 명을 받고 1907년 네덜란드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된 3인(이상설 이준 이위종)을 말한다.

이상설 선생은 조선 전통 산학과 근대 서양 수학을 연결한 책 <수리>를 1887년께 저술했다. 1895년 성균관장으로 부임하면서 수학과 과학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했고, 1900년엔 조선 최초의 중등 수학 교과서 ‘산술신서’를 집필했다. 조선 근대화를 위해 함께 힘쓴 ‘파란 눈의 한국인’ 호머 헐버트 박사로부터 각종 서양 서적을 전달받아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설 선생은 <수리>를 펴낸 시기를 전후해 한국 최초의 고전물리학 원고로 평가받는 <백승호초>도 썼다. <백승호초>엔 ‘관성의 법칙’ 등을 비롯해 19세기 말 유럽 대학에서 가르쳤던 물리학을 담았다. 역시 한국 최초의 근대 화학 교과서인 ‘화학계몽초’도 선생이 펴냈다.

그러나 헤이그 특사의 만국평화회의 참석이 실패로 돌아간 뒤 독기가 오른 일제는 선생의 저서를 모두 불태웠다. 이후 해방 전까지 우리말로 된 수학책은 절멸했다.

이상설 선생의 친동생인 이상익 선생 역시 ‘근세산술’이란 수학 교과서를 쓰는 등 근대 수학교육에 선구적 역할을 했다. 이상익 선생은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이 중동학교(현 중동고등학교)에 다닐 때 수학 담당 교사로 재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이상익 선생의 증손인 이재승 미국 미시간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등에 따르면) 호암은 학창 시절 수학·과학에 비상했다고 전해 들었다”며 “호암의 수학적, 과학적 사고에 기반한 미래 혜안이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이끈 원동력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수학의 효시는 조선시대 학자 경선징(1616~?)으로 추정된다. 경선징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수학책 <묵사집산법>을 지었다. 이 책에는 곱셈, 나눗셈뿐 아니라 방정식, 수열, 제곱근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는 조선 후기 ‘혁명적 과학자’ 홍대용의 여러 저서에 영향을 미쳤다.

경선징과 함께 국내 최초 수학자로 꼽히는 최석정(1646~1715)은 조선 숙종 때 영의정 등을 지내면서 <구수략>이란 수학책을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무한대·무한소 개념과 함께 ‘9차 마방진’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N차’ 마방진은 1에서 N²까지의 자연수를 가로·세로·대각선 합이 같도록 정사각형 형태로 배열한 것을 말한다. 마방진은 컴퓨터 암호의 바탕인 대수학의 ‘원조’라 할 수 있다.

국내 1호 수학 박사는 대한수학회를 설립한 최윤식 서울대 교수(1899~1960)다. 그는 미분방정식 논문으로 1956년 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생전 “국가 발전을 위해선 국립 수학연구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뜻은 반세기 후인 2006년 국가수리과학연구소가 설립되면서 이뤄졌다.

한국인 최초로 서양 수학 저널에 논문을 실은 학자는 2005년 타계한 이임학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다. 해방 후 혼란 속에서 남북한을 전전하다 캐나다에 정착한 이 교수는 1961년 ‘군이론(특정 조건을 만족시키는 숫자 또는 연산의 집합)’을 새롭게 개척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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