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가 29일(현지시간) 중국이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에 합류하기로 한 건 중동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가 가속화할 것임을 예고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세계 최대 원유수입국인 중국이 사우디와 밀월관계를 형성하면 국제 원유시장에서 중국의 입김은 더욱 커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사우디, 상하이협력기구 합류

안보 블록에 사우디 합류시킨 中…'페트로 달러' 흔들기 가속
사우디는 이날 중국 주도의 SCO에 대화 파트너로 합류하기로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전날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양국 관계가 역사상 가장 좋은 시기에 있다”고 평가한 다음 날 전해진 소식이다.

SCO는 중국과 러시아 주도의 정치·경제·안보 동맹이다. 중국·러시아·인도·파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 등 8개국이 정회원이다. 이란은 가입 절차를 끝냈다. 사우디·카타르·튀르키예 등 대화 파트너 9개국을 구성원으로 두고 있다. 대부분이 중국과 러시아에 친화적인 국가다. 서방을 중심으로 한 안보 블록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안보동맹),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협의체) 등을 견제하는 세력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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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와 걸프 지역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서방 국가를 중심으로 외교관계를 유지해 왔으나 최근 전선을 확장하고 있다는 평가다. 우신춘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 중동소장은 “SCO의 국제적 위상과 영향력이 커지는 한편 미국의 오랜 동맹인 사우디의 외교 자주성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라며 “중동 국가는 더 이상 미국 중심의 바구니에만 계란을 담지 않고 여러 주요 다자기구에서 균형을 찾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우디는 중국의 중재로 단절됐던 이란과의 외교 관계를 지난 10일 복원했고, 이어 SCO 합류를 결정했다.

사우디는 2018년 반(反)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 이후 미국과 갈등을 빚으면서 노골적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해 왔다. 중국 역시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든 틈을 타 사우디와 가까워졌다. 지난해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 주석이 각각 7월과 12월 사우디를 방문했을 때 사우디의 의전이 상당한 온도 차를 보이기도 했다. 시 주석은 6년 만인 지난해 12월 사우디 방문 당시 빈 살만 왕세자와 만나 에너지, 정보기술, 인프라를 망라하는 34개 협약을 체결했다.

○원유시장에서 중국 영향력 더 커질 듯

사우디와 중국은 외교·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많은 접점이 있다. 사우디는 세계 최대 석유 공급국으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산유국 협의체인 OPEC+를 주도하고 있고, 중국은 2017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이 됐다. 중국이 추진 중인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에서 중동의 역할도 중요한 상황이다.

오재영 KB증권 연구원은 “올해 중국의 원유 수요가 반등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사우디가 주요 고객인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며 “원유 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세계 석유 수요가 하루평균 1억170만 배럴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수요의 절반 이상은 코로나19 방역을 해제한 중국에서 나올 것이란 분석이다.

‘달러 패권’에 도전장을 내민 중국은 궁극적으로는 미국 달러화로 원유대금을 결제하는 ‘페트로 달러’ 체제를 흔들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해 12월 중국·걸프 아랍국가협력위원회 정상회의에서 원유 및 천연가스 무역에 위안화를 쓰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 첫걸음으로 중국은 지난 14일 사우디 국영은행과의 첫 위안화 대출 협력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중국이 원하는 원유 대금 지급은 아직 이루지 못했지만, 중국 수출입은행과 사우디 금융회사 간 첫 번째 협력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발전이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