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가 국가 부채를 줄이기 위해 국민 대상 크라우드 펀딩에 나섰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금모으기 운동’을 연상시킨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1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가 모금을 시작한 첫날 200만달러(약 21억5000만원)를 모았다고 보도했다. 림관엥 말레이시아 재무장관은 “국민들이 높은 애국심으로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여유 자금을 기꺼이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판 금모으기 운동’은 지난달 초 한 20대 법학 전공생이 경제를 살리기 위해 고통을 분담하자며 모금 사이트를 개설해 3500달러를 모은 것이 계기가 됐다. 이 사이트가 호응을 얻자 말레이시아 정부는 지난달 30일 ‘타붕 하라판 말레이시아(THM)’라는 신탁 펀드를 개설했다. 이어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모금을 독려하는 운동이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지난달 말레이시아 총선에서 사상 첫 정권 교체를 이룬 마하티르 모하마드 정부가 전 정부의 국가부채 축소·은폐를 폭로하면서 ‘나라빚을 갚아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림 장관은 지난달 23일 기자회견에서 “국가부채가 1조링깃(약 270조원)을 넘었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 국내총생산(GDP)의 65%에 해당하는 수치로, 전 정부가 밝혔던 국가부채 규모 7000억링깃을 크게 웃돈다. 이 때문에 마하티르 총리는 수도 쿠알라룸푸르와 싱가포르를 연결하는 고속철도 건설 계획도 취소하고 장관들의 임금을 10% 삭감하는 등 재정 절감에 나섰다. 말레이시아 재무부는 매일 인터넷 사이트에 기부금액을 공개하는 등 펀드를 투명하게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WSJ는 “국민 모금을 통해 갚기엔 국가부채가 너무 많다”며 일부 시민은 이 운동에 회의적이라고 보도했다. 외환위기 당시 한국인은 22억달러 상당의 금 226t을 내놨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