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째 사무총장은 반드시 여성이" 웹 캠페인까지
지역순환 따라 동구 출신 여성 유력인사들 잇단 출사표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 몰도바 부총리 등 물망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뒤를 이어 유엔을 이끌어갈 새로운 글로벌 리더는 누가 될 것인가.

올해 말로 만료되는 반 총장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벌써 다양한 논의들이 활발하게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엔 유엔에서도 '유리 천장'이 깨질지가 최대 관심사다.

지난 70년의 유엔 역사에서 반 총장을 포함해 모두 8명의 사무총장이 선출됐지만,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따라서 이번엔 여성이 사무총장을 맡아야 한다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고 있는 것.
오래전부터 '여성 유엔 사무총장' 선출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는 이들도 있다.

유엔체제위원회(ACUNS: Academic Council on the UN System) 이사를 지내고 현재 뉴욕시립대학과 컬럼비아 대학에서 강의 중인 진 크라스노가 대표적이다.

그녀는 '우리는 8명의 남성 유엔 사무총장을 가졌다.

9번째는 반드시 여성이 돼야 한다'는 슬로건을 내건 웹사이트까지 운영하면서 여성 후보들을 위한 공공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

크라스노는 미국 공영방송 NPR과의 인터뷰에서 "아프리카와 중동의 내전, 유럽의 광대한 난민 물결 등 전 세계 위기 지역을 돌아보면 가장 고통받고 있는 것은 대부분 여성"이라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사람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여성이 유엔 최고지도자가 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무엇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녀는 "전 세계에는 경이롭고 탁월한 여성들이 매우 많다"면서 "유엔 사무총장의 자질을 가진 여성을 찾기가 어렵다는 주장은 더는 타당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오는 7월 6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도 7일 "차기 유엔 사무총장은 여성이 돼야 하며, 그럴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외교협회와 여성잡지 보그 등은 그녀를 가장 유력한 차기 사무총장 후보 가운데 한 명으로 점찍은 바 있다.

그러나 피게레스는 사무총장에 나설 용의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럴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새 사무총장은 그동안 막후에서 이뤄졌던 관행을 깨고 최대한 투명하게 선출돼야 한다는 의견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과거엔 5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사무총장 선출을 위한 논의를 막후에서 진행한 뒤 5개 상임이사국과 10개 비상임이사국 등 안보리 15개 이사국 가운데 9개국 이상의 지지를 받은 후보를 유엔 총회의 승인을 받아 임명하는 절차를 밟아 왔다.

하지만 현 유엔 총회 의장인 모겐스 리케토프트는 "차기 사무총장은 전례 없이 투명한 절차를 거쳐 선출할 것"임을 공언하고 있다.

그는 여러 나라에 후보를 지명해 추천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청문회 성격의 인터뷰까지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될 경우 관행적으로 이어져 온 지역 순환 원칙도 일정 부분 위협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는 아프리카와 남미, 미국과 캐나다, 호주를 포함한 서유럽 등이 사무총장을 배출했기 때문에 이번엔 동유럽이나 러시아 출신이 유력할 것이라는 관측이 높았다.

그러나 지역 순환 원칙이 확고하게 굳어진 룰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전직 유엔주재 미국 외교관인 엘리자베스 카즌스는 "역대 사무총장은 서구 유럽이 3명, 남미가 한 명, 아프리카가 두 명, 아시아가 두 명이었다"며 이것만 보아도 지역 순환이란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차기 총장 선출 논의가 본격화되면 각 지역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지역 순환 논리는 무시 못 할 변수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동유럽 출신 여성 후보가 유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인지 동유럽 국가들 가운데는 벌써 차기 사무총장 후보자를 공식 지명한 나라들이 꽤 있다.

불가리아 정부는 지난 2월 차기 유엔 사무총장 공식 후보로 이리나 보코바 현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지명했고, 크로아티아는 베스나 푸시치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을, 동유럽의 소국인 몰도바도 나탈리아 게르만 부총리를 후보로 공식 지명했다.

이들 모두 능력 있는 외교관이자 자국어 외에 영어와 불어 러시아어 등에 능통한 최고의 커리어 우먼들이다.

이들 여성 외에도 마케도니아 출신의 스르잔 케림 전 유엔총회 의장, 이고르 루크시치 몬테네그로 외교부 장관, 다닐로 튀르크 전 슬로베니아 대통령, 안토니오 구테레스 유엔난민기구 최고대표 등 남성 4명도 도전장을 냈다.

이 가운데 안토니오 최고 대표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동구 출신이다.

출마 가능성은 차치하고 여성 사무총장 후보 캠페인을 벌이는 'womansg.org'에는 '탁월한 여성 지도자' 명단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콜린다 그라바르 키타로비치 크로아티아 대통령, 달리아 그리바우스카이테 리투아니아 대통령 등 수십 명의 전 세계 유력 여성의 이름이 올라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현재 기자 kn020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