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 '미다스의 손'…손대는 회사마다 환골탈태…비결은 '신속·과감한 수술'
쌤소나이트는 자타가 공인하는 여행용 트렁크 가방 브랜드의 대명사다. 튼튼하고 실용적인 가방으로 세계 각국에서 판매량 1위에 오르고 있다. 쌤소나이트와 함께 아메리칸투어리스트를 판매하는 쌤소나이트그룹은 1910년 스물여덟 살의 미국인 사업가 제스 슈와이더가 설립한 슈와이더 트렁크를 모체로 하고 있다. 105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하지만 1세기가 넘도록 기업을 유지하기까지는 위기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매우 심각했다. 이대로 가다간 회사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올 정도였다.

벼랑에 몰린 쌤소나이트 글로벌 그룹은 2009년 특급 구원투수를 기용했다. ‘기업 턴어라운드(실적개선)의 달인’으로 평가받는 티머시 찰스 파커(60)였다. 정식 이름보다 팀 파커로 더 유명한 그는 회장과 최고경영자(CEO)를 맡았다. 그가 지휘봉을 잡은 첫해에도 실적 악화는 계속됐다. 2009년 순이익이 5300만달러까지 떨어져 전년(1억4800만달러)의 35% 수준까지 급감했다.

○강력한 구조조정과 성장동력 확보 ‘환골탈태’

하지만 회사는 불과 2년 만에 ‘환골탈태’했다. 2011년 15억6500만달러(약 1조849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전년 대비 28%의 신장세를 보였다. 매출은 계속 늘어 2012년에는 17억7200만달러로 집계됐다. 2013년에는 20억달러를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23억5100만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순이익은 1억8600만달러였다. 2011년(8700만달러)의 두 배가 넘는다.

실적 호조는 올해도 이어졌다.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도 상반기에 11억19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6% 늘어났다. 매출 증가율은 유럽 17.4%, 북미 17.3%, 아시아 17.2% 등 전 지역에서 고루 증가했다.

파커 회장은 “대표 브랜드인 쌤소나이트가 세계 대부분 시장에서 1위를 지켰다”며 “일부 지역에서 실적 저하 요인이 있었지만 다른 시장에서 충분한 성장을 통해 상쇄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파커 회장이 쌤소나이트를 다시 승승장구할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은 강력한 구조조정과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였다. 파커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대대적인 비용 절감에 나섰다. 전 세계 영업을 관할했던 영국 사무소를 없애고 직원도 크게 줄였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매장은 가차없이 없앴다. 유통분야에서 대행사를 쓰거나 상당수 제조공장도 협력업체에 매각했다. 혹독한 다이어트 결과 쌤소나이트는 연간 1억달러의 고정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물론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노조에서는 대규모 인력감축을 진행한 파커 회장에게 ‘어둠의 왕자’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직장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임직원들이 그의 행동을 좋게 평가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파커 회장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시너지 기대되는 기업은 주저없이 인수합병

군살을 빼서 아낀 돈은 마케팅과 제품 개발에 사용해 상품 경쟁력을 높이는 데 쓰였다. 인수합병(M&A) 자금으로도 활용됐다. 그는 2012년 미국의 아웃도어 브랜드인 하이시에라와 명품 가방 브랜드인 하트만을 인수했다. 당시 파커 회장은 “하이시에라와 하트만은 쌤소나이트의 포트폴리오를 완벽하게 해준다”며 인수에 나섰다.

하이시에라는 북미지역 여행 가방 시장의 두 배 규모인 40억달러의 캐주얼 가방 시장에서 즉각적인 매출 확대를 가져다주고, 하트만은 글로벌 명품 가방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자 주저없이 추진했다. 그의 말대로 하이시에라와 하트만은 쌤소나이트와 시너지를 일으키며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고 올해 상반기 매출도 각각 18.4%와 9.7% 증가했다. 쌤소나이트는 지난해에도 가방 중심의 프랑스 패션브랜드인 리포를 2260만달러에 사들이며 M&A를 통한 매출 증가를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회사의 체질을 개선하면서 파커 회장이 가장 강조했던 것은 속도였다. 그는 구조조정을 할 때는 신속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결정과 행동을 늦추다 보면 2~3년 안에 실적이 개선되기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 그는 ‘헤드쿼터’ 역할을 했던 영국 사무소를 없애면서 각국 지사에 결정권을 대폭 넘겨줬다. 역시 스피드를 높이려는 의도다. 현장에서 일이 터졌을 때 본사의 지침을 기다리다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치는 것보다 실수가 있더라도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오히려 이익이라는 계산이다.

파커 회장은 중국의 경제 성장세 둔화와 부정부패 척결 캠페인으로 여행 수요가 줄어 매출에 타격을 받을 수 있겠지만 해외 회의가 많아지고 저가항공이 늘어나면서 가방에 대한 수요도 크게 증가하기 때문에 회사의 발전 가능성은 아직도 높다고 내다봤다.

○CEO 맡은 회사마다 ‘기사회생’

쓰러져가는 회사를 되살린 사례는 쌤소나이트뿐만이 아니다. 파커 회장은 서른네 살 때부터 CEO를 맡아 기업의 턴라운드에 있어 탁월한 실력을 보여줬다. 영국에서 ‘국제 턴어라운드 대상(International turnaround award)’까지 받은 기업 실적개선의 ‘명수’다. 그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철학과 정치학,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런던비즈니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학업을 마치고 영국 재무부와 몇몇 기업에서 일했던 파커 회장은 서른네 살의 나이(1986년)에 켄우드전자 CEO를 맡아 처음으로 회사를 이끌었다.

그의 역량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계기는 1996년 세계적 캐주얼 브랜드인 크락스 슈즈의 CEO 취임이다. 크락스에서 6년간 일하면서 파커 회장은 조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유럽 내 생산기지를 철수하는 등 20개 공장을 폐쇄했고,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디자인으로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를 통해 크락스는 150%의 매출 성장을 이뤄냈다.

2002년에는 퀵핏이라는 유럽 최대 타이어 유통업체 CEO로 옮겼다. 여기서도 2년 만에 영업이익 250% 증가라는 수치를 자랑했다. 2004년 영국자동차협회 CEO를 맡아서도 3년여간 현금창출능력(EBITDA·법인세 이자 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을 1억8500만달러에서 2007년 4억7300만달러까지 끌어올렸다. 파커 회장이 사용한 방법은 쌤소나이트와 다르지 않았다. 강력하고 신속한 구조조정과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제품의 민첩한 출시였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