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하는 日 수출기업] '터보 엔低' 단 스바루車, 주문 밀려 통로도 조립라인으로 개조
‘스바루’ 자동차 브랜드로 알려진 후지중공업의 기타칸토 지방(도쿄 북쪽) 내 군마공장. 이 공장에 얼마 전 새로운 생산라인이 생겼다. 1층과 2층 사이에 있다고 해서 ‘중간 2층’ 라인으로 불린다. 생산 부족으로 기존에 통로로 쓰던 공간을 조립라인으로 개조했다.

혼다 닛산 등 자동차 공장이 밀집한 기타칸토 지방은 요즘 후지중공업처럼 늘어나는 수요를 맞추기 위한 ‘몸부림’이 한창이다. 도요타가 있는 아이치현에서는 고졸 예정자의 유효구인배율이 두 배를 넘는다. 구인자 수가 일하려는 고졸자보다 두 배 이상 많다는 의미다. 엔저로 일본 기업의 수출이 증가하면서 대기업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엔저’ 터보엔진 장착한 자동차

도요타는 지난 5일 올(2014회계연도) 영업이익을 2조5000억엔, 순이익은 2조엔으로 상향 조정했다. 상반기(4~9월) 예상을 웃돈 사상 최대 이익을 반영한 결과다. 도요타뿐만 아니다. 일본 7개 자동차 기업 중 후지중공업 마쓰다 스즈키 미쓰비시자동차 등 5개사가 상반기 사상 최대 순이익을 달성했다. 북미 시장 호조에다 엔화가 약세를 보인 덕분이다. 이들 업체 이익은 회사 전망보다 더 불어날 공산이 크다. 도요타는 달러당 104엔을 전제로 예상 실적을 잡고 있다. 지난 주말 엔·달러 환율은 116엔대로 이미 12엔 이상 높다. 도요타는 엔·달러 환율이 1엔 오르면 연간 400억엔의 영업이익이 늘어난다.

노무라와 대신증권에 따르면 도요타의 올 영업이익 전망치(증권사 평균)를 달러로 환산하면 232억달러로 현대·기아차 전망치(98억달러)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조윤남 대신증권리서치 센터장은 “일본 자동차사는 달러당 80엔대에도 이익을 낼 수 있도록 수익 체질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으로 부활한 전자업체

일본 전자업계의 실적 호전은 히타치 미쓰비시전기 등 구조조정에 성공한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나카무라 도요아케 히타치 부사장은 3분기 기업설명회(IR)에서 “개혁의 방향은 옳았고, 반응도 좋다”고 자평했다. 이 회사는 올 영업이익 전망치를 2년 연속 사상 최대인 5800억엔으로 상향 조정했다. 히타치는 반도체와 LCD 패널에서 손을 떼면서 2008년 한 해에만 일본 제조업계 최대인 7800억엔의 적자를 봤다. 그 후 사업 구조를 저장장치(스토리지) 중심의 정보기술(IT) 시스템과 철도 승강기 발전 등 인프라사업에 집중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도시바도 일본 내 TV 생산을 전면 중단하는 대신 낸드플래시 메모리반도체 생산과 발전 등 인프라사업을 선택했다. 미쓰비시전기는 D램 반도체 사업 분리와 휴대폰·LCD사업에서 철수하고 공장자동화(FA)기기, 공조기기 등에 주력했다. 이 회사 역시 중국 스마트폰 FA기기 수요에 힘입어 올해는 사상 최대 순이익(1750억엔)을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스마트폰사업을 대폭 축소한 파나소닉도 올 영업이익은 2008회계연도 이후 최대인 3500억엔에 이를 전망이다. 스마트폰사업 부진에 허덕이는 소니만 올해 2300억엔 적자를 예상하며 시련기를 못 벗어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내년 일본 8개 주요 전자업체 영업이익 합계는 220억달러로 삼성전자(225억달러)에 맞먹을 전망이다. 국중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는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교체되지 않는 한 일본 전자업체 실적은 엔저 가속화로 예상보다 더 좋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기업들의 실적 호조는 해외시장에서 마케팅 공세로 나타나고 있다. 샤프 파나소닉 소니 등 일본 가전업체들은 중국에서 최대 성수기인 국경절(10월1일) 연휴 때부터 제품 가격을 30~50% 내렸다. 일상적인 할인 판매지만 가격 인하폭이 큰 데다 지금까지 인하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과거와 다르다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실제 중국 최대 가전판매 사이트인 징둥상청에서 소니와 샤프의 55인치 고선명 3D TV는 9499위안(약 170만원)으로 삼성전자의 같은 모델 판매가격인 1만6499위안보다 훨씬 쌌다. 덕분에 TV시장에서 일본업체들의 점유율은 지난 10월 1~2%포인트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