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고대 유적지 카르멜산 동굴서

시신을 꽃 위에 누이는 매장 풍습이 1만3천700년 전에도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사이언스 데일리가 4일 보도했다.

이스라엘과 프랑스·독일·미국 학자들로 이루어진 고고학 연구팀은 이스라엘 북부의 고대 유적지인 카르멜산의 라케펫 동굴 발굴 작업 중 1만3천700~1만1천700년에 만들어진 4개의 무덤에서 샐비어꽃을 비롯, 골풀과 박하 같은 꿀풀과 식물 여러 종의 흔적 수십개를 유골 밑에서 발견했다고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이는 1만3천700년 전 나투프 인들이 오늘날과 비슷한 매장 의식을 행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약 1만5천~1만1천500년에 지중해 동부 지역에서 문명을 이뤘던 나투프인은 인류 최초로 유목 생활을 접고 돌 기초 위에 구조물을 세운 종족으로 공동묘지를 조성해 대대로 공동사회 구성원들을 매장하는 풍습도 이들에게서 처음으로 발견됐다.

공동묘지는 동굴 안의 첫번째 방이나 동굴 밑에 있는 테라스에 조성됐지만 이보다 이른 시기의 문화에서는 죽은 이를 묻는 경우가 드물었고 설령 매장을 해도 되는대로 묻었다.

카르멜산은 나투프 인의 정착지 가운데 인구가 밀집했던 가장 중요한 곳 중 하나로 수십년간 연구 대상이 돼 왔다.

라케펫 동굴 안에 조성된 나투프인의 공동묘지에서는 아기와 어린이, 어른 등 모두 29명의 유골이 발견됐는데 대부분은 단독 매장이었고 두 시신이 한 구덩이에 매장된 곳도 일부 있었다.

연구진은 무덤 네 곳에서 얇은 회반죽처럼 펼쳐진 진흙판 위에 나 있는 식물의 흔적을 발견했다.

이들 식물의 흔적은 대부분 백합과 식물처럼 줄기가 네모난 것이었고 그 중 하나는 요즘도 이 지역에서 자라는 샐비어의 일종으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연구진은 이런 증거들로 볼 때 봄철에 다채롭고 향기 나는 꽃을 이용해 시신이 매장됐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라케펫 동굴은 녹색 식물과 꽃 핀 식물로 장식된 최고(最古)의 무덤으로 기록된다고 밝혔다.

또 어른 뿐 아니라 어린이와 청소년의 무덤들도 꽃으로 장식된 것으로 보이며 동굴 안과 무덤을 채운 물체 중에 석기가 수천점이나 있었음에도 점토 판에 석기나 유골의 흔적은 없고 식물의 흔적만 남았다는 것은 고대인들이 무덤의 바닥과 벽을 꽃으로 두껍고 빽빽하게 둘렀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공동묘지의 바닥 암석에서는 끌로 쪼아낸 흔적이 있어 이들이 용도에 맞게 무덤을 준비한 것으로 보이며 무덤과 가까운 곳과 동굴 밑 테라스의 암석 노출부에 성혈(性穴) 등 다양한 형상을 새겨놓은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나투프인들은 인구 밀도가 증가하고 토지와 먹거리, 자원을 둘러싼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변화의 시기에 살았다.

공동묘지 조성과 독특한 매장 의식은 이들 사회의 복잡성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영임 기자 youngn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