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한국 이름 김성용 · 51) 미국 북핵 6자회담 특사는 미 외교가에서 한국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닌다. 한국계로서 첫 미 국무부 한국과장,첫 대사급(6자회담 특사)발탁 등에 이어 이번엔 주한미국 대사로 내정된 것이다. 그가 한국 정부의 아그레망(주재국 임명동의)을 받은 뒤 미 상원에서 최종 인준을 받으면 한 · 미 수교 129년 만에 첫 한국계 주한 미국대사가 탄생하게 된다.

그는 미국의 대표적인 한반도 문제 전문가다. 그의 북한 방문 횟수는 13번에 달한다. 2008년 6월 북한이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하는 현장에 미국 대표로 참석했다. 행사 후 1만2000여쪽에 이르는 북한 핵 관련 서류를 들고 판문점을 넘는 장면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잡았다.

그는 미 펜실베이니아 주립대를 졸업하고 로욜라 법대를 거쳐 로스앤젤레스(LA)카운티 검사로 활동했다. 외교관으로 전직한 그는 한국통으로 커리어를 쌓았다. 2003년 주한 미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발령받았을 당시 경제과에서 첫 근무했다. 정무과를 지원했지만 자리가 없었다. 이후 한반도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기 시작, 2006년 한국계 처음으로 미 국무부 한국과장에 올랐다. 2008년 9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대사급인 6자회담 특사에 임명됐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김 특사의 대사 내정에 대해 "북핵 문제를 비롯한 실질적인 대북정책과 갖가지 현안 대응에 있어 한 · 미 공조가 더욱 긴밀하게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1960년생인 그는 서울 성북동에 살면서 은석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녔고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 갔다가 중학교 1학년 때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민갔다.

김 특사의 한국 내 대표적 지인은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이다. 그는 서울 성북동에서 동네 친구인 정 수석과 어린시절을 함께 보냈다. 정 수석은 "내가 1993년 (한국일보)워싱턴 특파원에 부임하면서 현지 주택을 구할 때까지 보름 동안 그의 집에 얹혀 살았을 정도로 절친하다"고 했다. 김 특사가 같은 해 LA에서 결혼할 때는 정 수석이 워싱턴에서 LA까지 가 함진아비 역할을 했다. 김 특사의 부인은 이화여대 미대 출신이다.

정 수석은 "김 특사는 책임감이 강하고,침착하며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라고 말했다. 정 수석은 "워싱턴 특파원 시절 북 · 미회담이 말레이시아에서 열렸는데,그에게 전화를 걸어 취재했더니 정색을 하면서 '아무리 친구지만 얘기 못하겠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정 수석은 "부친이 폐암 진단을 받자 남은 기간 아버지와 같이 보내겠다며 휴직계를 냈을 만큼 김 특사는 효심이 깊었다"고 덧붙였다.

외교 소식통은 "김 특사는 미국 내에선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 · 태 차관보와 막역한 사이이며 오바마 대통령도 그를 아낀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김성환 외교부 장관,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위성락 외교부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등과 절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친 김재권 씨는 1973년 8월 도쿄 팔레스호텔에서 '김대중 납치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주일공사를 지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을 정리한 소설가 유시춘 씨는 "성 김이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이 사실이 알려지면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김 전 대통령이 만류하는 바람에 자서전에 안썼다"고 말했다.

김 특사의 부친은 1958년 부산발 서울행 경비행기에 탔다가 탑승자 30여명과 함께 괴한에 의해 북한으로 납치됐다가 송환된 적이 있다. 김 특사의 어머니 임현자 씨는 1960~1970년대 아나운서로 유명했던 임택근 전 MBC 전무(79)의 누나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홍영식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