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몰락,자민당의 자연사."(중앙공론),"혼돈의 일본정치,거국 내각 시급."(문예춘추)

일본 시사 월간지들의 4월호 헤드라인은 섬뜩하다. 자학에 가까울 정도로 일본의 정치와 경제 상황을 비판하고 있다. 일본의 미래를 위해 대대적인 개혁도 요구했다.

오는 9월 국회(중의원,미국의 하원격) 임기 만료를 앞두고 일본 열도가 흔들리고 있다. 1974년 오일쇼크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가운데 정치인들의 스캔들이 연이어 터져나오면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 상황으로 빠져드는 모습이다. 집권 자민당의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제1야당인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가 유력했으나,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가 정치자금에 연루돼 '대표 사임설'까지 나오며 정계 대재편 시나리오도 부상하고 있다.
[소용돌이 치는 일본정가] 자고나면 스캔들…'거대공룡' 자민당 자연死하나
집권당 총재인 아소 다로 총리는 리더십 부재에다 연이은 실언으로 지지율이 10%대까지 곤두박질쳤다. 현재대로 라면 이달 말 2009회계연도 예산안이 통과된 뒤 조기 총선거가 실시될 경우 사상 처음으로 정권이 교체될 것이란 전망이 강하다.

지난해 9월 취임한 아소 총리는 취임 이후 밤마다 고급 음식점과 술집을 찾아다니는 등 서민의 삶과는 동떨어진 행보를 보여 구설수에 올랐다. 게다가 국회 연설 등에서 '한자'를 잘못 읽거나 실언을 연발해 총리 '자질'이 없다는 수모까지 겪고 있다. 그는 작년 12월 전국의 도지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내가 병원을 경영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의사 중에는) 분명히 말해서 사회적 상식이 결여돼있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일본 의사회 회장이 총리 집무실을 방문해 직접 항의하자 아소 총리는 "의사들을 불쾌하게 했다면 미안하다"며 사죄하기도 했다. 자민당 간부들도 "아소 총리의 잇따른 실언 때문에 지지단체가 뭉텅이로 떨어져 나가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소용돌이 치는 일본정가] 자고나면 스캔들…'거대공룡' 자민당 자연死하나
여야를 넘나들며 정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도 불법 정치자금 문제에다 실언 파동까지 겹쳐 총리 자리를 눈앞에 두고 사임 압력을 받고 있다. 오자와 대표는 최근 도쿄지검 특수부가 그의 불법 정치헌금 수수 의혹에 대해 조사를 벌이면서 궁지에 몰렸다.

이와 관련,아사히신문은 지난 11일 오자와 대표가 지금까지 불법 자금을 제공한 의혹을 받고 있는 니시마쓰건설 이외에 중대형 건설업체 네곳과도 관여된 의혹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 5개사가 오자와 대표 측에 제공한 '우회 헌금' 액수는 1억엔에 달한다. 추가 의혹 대상으로 떠오른 회사는 시미즈건설과 오바야시구미,다이세이건설,도다건설이다.

더구나 오자와 대표는 지난 12일 "엔고를 이용해 제주도를 사버리자"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져 한국 내에 반일 감정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오자와 대표는 노조단체인 렌고의 사사모리 기요시 전 회장과 만난 자리에서 "엔화 가치가 높아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의 제1야당 대표의 이런 발언이 사실이라면 한 · 일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는 망언이다.

민주당에 직격타를 가한 니시마쓰건설의 위법 헌금 문제의 불똥은 여권으로도 튀고 있다. 여당 중진인 니카이 도시히로 경제산업상도 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받고 있다. 니시마쓰건설의 퇴직 임원이 대표로 있는 정치단체는 니카이 경제산업상의 정치자금 모금 행사에도 자금을 지원했다.

국제적으로 일본을 망신시킨 장관도 나타났다. 지난달 14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 · 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 나카가와 쇼이치 당시 재무상은 술에 취한 몽롱한 표정으로 졸면서 기자회견을 해 국제적 조롱거리가 됐다.

그는 회담이 끝난 후 기자회견에서 20분 내내 혀가 돌지 않아 말을 잇지 못하거나,엉뚱한 답변을 해대 기자들을 아연실색케 만들었다. 기자회견 직후 바티칸박물관 관광에 나선 그는 술이 덜 깨 역사적 미술품에 손을 대고,접근 금지구역에 들어가 경보가 울리게 하는 등 온갖 추태를 다 부렸다.

세계 경제위기 해법을 찾기 위해 열린 G7회의에 세계 2위 경제대국 일본을 대표해 참석한 재무상의 모습이라고 하긴 어려운 모습이어서 일본 국민들의 분노는 매우 컸다. 나카가와 재무상은 여론의 거센 비난에 직면해 결국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소용돌이 치는 일본정가] 자고나면 스캔들…'거대공룡' 자민당 자연死하나
일본 정가에 크고 작은 스캔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대를 이어가면서 정치를 하는 '귀족 정치인'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또 50년 이상 자민당의 장기 집권이 이어지면서 정치권과 업계의 부패 구조가 고착된 것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정가에서는 4월 이후로 예상되는 총선에서 여야를 넘는 대대적인 정계재편을 예상하고 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스즈오키 다카부미 편집위원은 "여야 정치인들의 잇따른 스캔들로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매우 커 일본 정계가 대대적인 재편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최인한 기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