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뉴욕 월가의 시장참여자들 사이에는 세계 증시의 4대 중심 축이 무너지고 있다는 말이 자주 들린다.

가장 큰 축인 미국 증시의 다우지수는 금융구제법과 경기부양책에 대한 실망감으로 12년 만의 최저치로 추락했다. 일본 증시는 내수 부진 속에 엔화 강세와 아소 다로 정부의 무능력 등이 겹쳐 또다시 '잃어버린 10년'이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깊은 나락에 빠지고 있다.

유럽 증시도 만만찮다. 미국발 모기지 사태의 충격에다 최대 투자국인 동유럽 통화위기,유로 랜드 회원국인 아일랜드 국가 부도설,영국의 제2 외환위기설 등으로 혼탁한 상황이다. 또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최고의 활황세를 보였던 러시아와 중남미 증시도 유가 급락 등으로 이제는 서방에 손을 벌릴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

4대 중심 축이 무너질 조짐을 보임에 따라 글로벌 증시를 구제할 최후 버팀목이 어디가 될 것인가에 월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고 있지만 중국 증시의 '립스틱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는 사람이 많다. 립스틱 효과란 불황일수록 여성들이 립스틱을 선호함에 따라 수익성이 개선되는 화장품 회사의 주가는 오르는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위기일수록 잘나가는 현상을 통칭한다.

지난해는 중국과 인도 증시가 안 좋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중국 증시는 높은 대미 경제 의존도와 원유 수입 비중을 감안할 때 미국발 모기지 사태와 고유가 시대 하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년 한 해 중국 지수는 65% 정도나 급락했다.

최근 중국 증시가 세계 증시의 최후 버팀목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나올 정도로 립스틱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지난해 7월 초를 정점(WTI 기준,147달러)으로 유가가 급락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유가 급락의 영향이 본격화한 작년 9월 이후 중국 정부는 인플레 부담이 줄어들자 경기 부양에 전력투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가 위기에 빠져들 때 립스틱 효과가 나타나느냐는 위기 대책으로 루스벨트 모델(최근에는 브라운 모델)을 추진할 수 있느냐가 좌우한다. 루스벨트 모델은 강화된 국가의 역할을 바탕으로 적기에 과감한 정책을 추진해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방식이다. 중국은 그 어느 국가보다 이 모델 적용이 가능하다는 평가며 실제로 지난해 9월 이후 추진하고 있다.

또 위기 극복 주체인 국가의 현금흐름이 좋을수록 립스틱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 현재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2조달러에 육박한다. 언제든지 동원 가능한 화인자금(중국계 자금)까지 감안한다면 지금 당장 가용할 수 있는 자금 규모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체 회원국보다 많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이 많은 자금으로 '팍스 시니카' 시대를 앞당기려는 중국의 노력이 역력하다. 일례로 중국은 고유가와 고원자재 가격 시대가 다시 전개될 경우 보다 빨리 확실하게 주도권을 쥐기 위해 전 세계 부존자원을 마치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중화경제권, 화인경제권 등 주변국을 대상으로 한 세확장 작업도 빨라지는 추세다.

하지만 변수는 많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미국과의 마찰이다.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자 미국은 중국에 대해서만 유독 '달러 약세 ·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고 다른 국가에 대해서는 '달러 강세'를 추구하는 이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경기 부양에 주력해야 하는 중국으로서는 위안화 절상보다 절하가 더 필요하기 때문에 미국과의 마찰이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이 많은 부담을 안고 중국에 대해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는 데는 숨은 뜻이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앞으로 발행할 국채를 자체 소화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본다. 이 경우 외화 사정이 괜찮은 중국과 일본이 국채를 사줘야 하는데,위안화 절상 압력으로 중국 경제가 더 어려워지면 미국 국채를 매수하지 않겠느냐는 숨은 의도가 있다는 시각이다.

만약 이런 고리가 형성돼 미국 경기가 회복할 경우 붕괴되는 세계 증시의 4대 중심 축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 월가에서 중국 증시의 립스틱 효과를 자주 거론하고 또 기대를 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객원 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