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슐 보건장관, 킬퍼 백악관 CPO 사퇴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의 고위 관리들이 `탈세 스캔들'로 잇따라 중도하차하면서 정부 출범 초기부터 국정운영에 암운이 드리워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경제위기 극복과 미국의 재건을 위한 국민의 책임감을 촉구했으나, 정작 납세의무를 등한시한 고위 공직자들의 부도덕한 과거가 속속 드러나면서 낙마 도미노 사태가 발생하는 등 파문이 커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인 톰 대슐 보건장관은 이날 자신의 탈세문제가 정치권에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상원 인준절차를 끝마치지도 못한 채 지명자 신분에서 전격 사퇴했고, 오바마는 이를 수용했다.

대슐은 상원의 인준을 요하지 않는 백악관의 `의료 차르' 자리에서도 물러남으로써 당분간 워싱턴 정가 전면에 복귀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대슐은 "국가의 의료개혁을 의회와 국민의 완전한 신뢰없이는 추진할 수 없을 것 같다"며 "나는 그럴만한 지도자가 아니다"라고 사퇴의 변을 밝혔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대슐를 지지한다고 했던 오바마도 악화된 여론을 무시하기 어려웠던 듯 즉각 성명을 내고 "슬프고 유감스럽지만 나는 그의 결정을 받아들였다"고 `읍참마속'의 심정을 드러냈다.

대슐을 계속 감싸고 돌 경우, 정치적 후유증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질 것을 우려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오바마는 경기부양법안의 상원 심의와 표결을 앞두고 공화당의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서 대슐 문제로 더 이상 발목이 잡혀서는 안된다는 상황판단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상원 원내대표로 활동했던 대슐은 26년간 의정활동을 통해 구축해 놓은 의회내 인적 네트워크의 `엄호' 속에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상원 인준을 통과할 것이라는 관측이 높았으나, 결국 오바마 정권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결자해지의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불과 수시간 전에 백악관 `최고 성과관리 책임자(CPO:Chief Perfomance Officer)'에 임명됐던 낸시 킬퍼가 자신의 탈세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이 대슐의 용퇴를 재촉하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킬퍼는 지난 1995년 자신이 고용했던 가정부에게 실업보상세를 지급하지 않는 바람에 자신의 주택에 대해 946달러의 `차압'이 들어간 사실이 언론에 의해 드러났고, 논란이 명쾌하게 수습되지 않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날 대슐과 킬퍼의 줄사퇴로 오바마 행정부에서 고위직에 지명됐다가 중도하차한 사람은 빌 리처드슨 상무장관 내정자를 포함해 3명으로 늘어났다.

국세청을 지휘해야 하는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세금 불성실 신고 문제로 홍역을 치르다 상원 인준을 어렵사리 통과했지만, 이번 탈세파문으로 인해 매우 불편한 처지에 놓일 것으로 예상된다.

도덕주의를 앞세운 오바마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력이 화려한 인물들로 조각(組閣)을 단행했으나, 예기치 않았던 탈세논란 등이 비집고 나오면서 고위직 인선과 관련해 충분한 사전검증을 소홀히 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여기에다 출범 보름이 경과한 이날에서야 상무장관 후보를 지명했고, 보건장관은 다시 공석이 되면서 오바마 정부의 국정운영에는 일정부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워싱턴연합뉴스) 고승일 특파원 ks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