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그루지야가 8일 남오세티야 독립 문제를 놓고 전쟁에 돌입한 가운데 미국은 당사국들간의 자제를 촉구하면서도 그루지야 지지 입장을 분명히 함으로써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웠다.

곤잘로 갈레고스 국무부 부대변인은 이날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당사국 고위 관리들과의 전화통화에서 진정을 호소하고 있다면서도 "우리는 그루지야의 영토 통합을 지지한다"고 이번 분쟁에서 그루지야 편에 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을 수행해 중국 베이징에 머물고 있는 데이너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도 "미국은 그루지야의 영토 통합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미 국방부측도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으며 그루지야 당국과 접촉을 가졌으나 그루지야 측으로부터의 지원 요청은 없었다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 취임 이후 러시아와 사사건건 대립해온 미국은 러시아와 그루지야간의 전쟁에서 공개적으로 그루지야편에 섬으로써 앞으로 미-러 관계의 악화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사실 러시아와 그루지야간 전쟁의 배경을 들여다보면 미국이 양측간 갈등을 심화시켜 분쟁을 촉발시키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루지야와 러시아는 1990년대 이후 인구 7만명 정도인 남오세티아의 독립 문제를 놓고 계속 대립해왔으나 이른바 2003년 장미혁명으로 집권한 미하일 사카슈빌리 대통령이 노골적인 친미노선을 내걸고 남오세티아와의 영토 통합을 추진, 사태가 악화됐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부정선거 시비에도 아랑곳없이 사카슈빌리 친미 정권을 강력히 지지해왔으며 그루지야는 대규모 이라크 파병 등으로 미국의 환심을 샀다.

그루지야는 또 러시아가 강력히 반대하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추진, 미-러간의 반목을 심화시키는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 중인 부시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그루지야 사태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될 만한 의견교환이 있었다는 조짐은 없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도 8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세 차례 전화통화를 갖고 사태 해결책을 논의했으나 라브로프는 '남오세티아 내 러시아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입장만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처럼 첨예하게 부딪치는 미국과 러시아의 그루지야 사태에 대한 입장은 현재로서는 좀처럼 접점을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유엔은 물론 유럽연합 등 국제사회가 일제히 그루지야 사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에 착수했지만, 러시아와 그루지야간 무력충돌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미국이 그루지야 지지 입장을 천명하고, 부시 대통령이 그루지야를 이 지역 '민주주의의 횃불'이라고 지칭했던 점을 감안하면 미국이 이번 사태를 보고만 있지 않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워싱턴연합뉴스) 이기창 특파원 lk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