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싸고 편리해도 약물단속에‘구멍’ 시장규모 2500억달러, 발기부전치료제 등 단골 루트 휘말려 뉴욕 롱아일랜드에 살고 있는 수잔 크로스씨. 몇 년 전 심한 병을 앓았던 크로스씨는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다. 얼마 전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은 그녀는 약국에 가는 대신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인터넷에 접속해 온라인 약국을 방문, 몇가지 정보를 입력하고 주문 버튼을 눌렀다. 닷새 후 크로스씨 집으로 의사의 처방전대로 조제된 약이 배달됐다. 크로스씨는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배달까지 며칠 걸리지만 진료 후 바로 먹어야 하는 약이 아니면 인터넷으로 주문한다”며 “온라인 약국 덕분에 약값을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약국이 미국에서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저렴한 가격과 편리함을 앞세워 제약시장을 거세게 파고들고 있다. 미국 온라인 약국시장은 이미 상당한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 최대 온라인 약국 가운데 하나인 드러그스토어닷컴에 따르면 시장규모가 2,52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드러그스토어의 경우 지난해 매출이 약 3억6,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45% 성장했다.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한 전문의약품도 온라인 약국 바람에 합류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주피터리서치는 온라인 처방약시장이 지난해 32억달러에서 오는 2007년 138억달러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온라인 약국이 약진하는 이유는 역시 가격. 드러그스토어닷컴의 한 관계자는 “온라인으로 처방약을 구입하면 약값을 20~30% 절약할 수 있다”고 밝혔다. 편리함도 빼놓을 수 없는 강점이다. 고객이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집 앞까지 배달을 해준다. 온라인 약국은 고객을 진료한 의사에게서 처방전을 받아 확인한 후 보내준다. 일부 온라인 약국은 심각한 질병이 아닐 경우 인터넷이나 전화로 의사가 간단하게 진료를 한 후 처방전까지 발급해 더욱 편리하다. 병원에 갈 필요 없이 인터넷으로 진료에서 조제까지 원스톱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온라인 약국의 단점은 직접 약국에 가는 것보다 시간이 걸린다는 것. 대신 급하게 필요한 약이 아니라면 약국에 가는 번거로움을 줄이고 약값도 절약할 수 있다. 온라인 약국의 등장은 미국보다 캐나다에 더 큰 혜택을 안겨주고 있다. 캐나다는 미국과 사실상 통합된 경제체제를 이루고 있지만 국경을 사이에 두고 약값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부 유명 제약사의 약은 캐나다가 미국보다 40% 이상 싼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고객들은 온라인 약국이 생기기 전에는 미국 내 약국에서 약을 사야 했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 온라인 약국을 통해 캐나다에서 직접 약을 구입할 수 있다. 배달기간도 미국에서 주문하는 것과 차이가 없다. 주피터리서치는 캐나다의 인터넷 약국 매출이 지난해 14억달러로 전년보다 두 배나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고객들이 캐나다로 발길을 돌리자 미국 제약회사들은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캐나다에서 값싼 약이 역수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시도도 활발하다. 그중 하나가 캐나다의 온라인 약국에 공급하는 약품의 물량을 제한하는 것. 캐나다의 온라인 약국들은 이에 물러서지 않고 미국 이외 다른 지역에서 약을 구매하고 있다. 일종의 수입선 다변화 전략인 셈이다. 온라인 약국이 때아닌 미국과 캐나다 사이의 약품전쟁을 불러온 것이다. 새로운 첨단기술도 온라인 약국의 앞날에 희망을 던지고 있다. 헬스램프(HealthRa mp)는 지난해부터 인터넷으로 약국을 연결하는 ‘알엑스프라이스포인트(RxPricePoint)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의사가 개인휴대단말기(PDA)에 처방전을 입력하면, 그 처방전에 맞는 약을 가장 싸게 파는 약국을 검색해 주는 것이다. 헬스램프는 연내에 전국적인 서비스에 들어갈 방침이다. 현재 알엑스프라이스포인트는 단순히 최저가를 제시하는 약국을 알려주는 데 그치고 있지만, 이 서비스는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암시하고 있다. 향후 온라인 약국이 급속히 성장할 수 있는 기술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의사의 처방전을 온라인 약국에 전달하는 귀찮은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앞으로는 진료가 끝남과 동시에 온라인으로 약을 주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최근 몇몇 온라인 약국들이 헬스램프의 서비스에 참가하기로 합의하면서 실시간으로 온라인 약국에 주문할 수 있는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인터넷 보급과 함께 온라인 약국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온라인 약국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각종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불법 온라인 약국들이 처방전이 필요한 약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고 있고, 약물 오남용도 우려되고 있다. 지난 2001년에는 캘리포니아에서 18세 청소년이 인터넷으로 구입한 항우울증약을 복용하고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미국 보건 당국은 현재 1,200여개의 불법 온라인 약국들이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불법 온라인 약국들은 의사의 진료가 꼭 필요한 약을 무분별하게 판매하고 있다. 국립약물중독 및 오용센터(CASA)가 실시한 조사에서 온라인 약국 가운데 실제로 처방전을 요구한 곳은 6%에 그쳤다. 온라인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불법적으로 많이 판매되는 약품은 남성발기부전제, 다이어트약품, 진통제 등이다. 불법 온라인 약국은 대량의 광고메일을 뿌리고 잠깐 동안 영업을 한 뒤 사이트를 폐쇄하고 자취를 감춰 단속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부 자체적으로 처방전을 발급하고 있는 온라인 약국에 대한 우려도 높다. 온라인 약국에 고용된 의사가 형식적으로 검사하고 처방전을 발급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환자가 인터넷상에서 간단한 질문에만 대답하면 거의 처방전을 써준다. 사실상 환자가 원하는 약을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것이다. 우울증처럼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환자의 경우 자칫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지난해 온라인 약국에서 처방전을 전문적으로 발급한 한 의사는 7개월 동안 무려 5,866건의 처방전을 발행했다. 하루에 28명의 처방전을 쓴 것이다. 그중 일부는 전화와 e메일로도 환자를 진찰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환자 가운데 한 명이 사망해 결국 법정에 섰다. 의사들이 온라인 약국에서 처방전을 써주는 이유는 단 하나. 돈 때문이다. 일부 의사는 처방전을 써 주는 것만으로 1년에 100만달러를 벌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보건 당국은 ‘규제 대상 약품은 전통적인 진찰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터넷으로 행해지는 진찰은 전통적 진찰 방식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온라인 약국에 대한 우려에서 불구하고 온라인 약국의 약진은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온라인 약국은 경비를 크게 줄일 수 있어 회사 입장에서는 이윤이 높은 편이다. 게다가 인터넷에 익숙한 베이비붐 세대가 중년층과 노년층으로 접어들면서 온라인 약국의 이용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현재 여러가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는 만큼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 온라인 약국을 바람직하게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드러그스토어닷컴의 피터 누퍼트 사장은 “온라인 약국이 제대로 정착하려면 환자, 의사, 약사의 관계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며 “환자들이 인터넷으로 약을 주문하려는 이유를 파악해 적법한 의료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온라인 약국. 만인에게 유익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법적 장치 및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뉴욕=김경근 특파원 zeneca@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