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거대 출판사나 음반회사들이 가장 겁내는 곳은 어디일까. 불과 몇해 전만 해도 대형서점이나 음반업체들이었다. 이들이 어떻게 팔아주느냐가 판매량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요즘은 답이 바뀌었다. 월마트를 비롯한 할인매장들이다. 정답이 바뀐 이유는 몇가지 숫자만 봐도 쉽게 알수 있다.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서적의 40%가 할인매장을 통해 나간다. 이 비율은 음반의 경우 50%,DVD는 무려 60%까지 올라간다. 인기 여성 3인조 그룹 딕시 칙스의 최신 앨범은 5백70만장 팔렸는데 월마트에서만 60%가 넘게 팔렸을 정도이다. 문화계에서는 이런 변화를 "지진이 일어난 것 같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런 급격한 변화에 대한 우려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주요 고객들이 '보수적인 중산층'인 할인매장들이 이들의 구미에 맞는 물건만 갖다 놓고 있고, 역으로 이런 추세가 미국 문화를 '보수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딕시 칙스,토비 케이스 등 컨트리 가수들이 할인매장을 통해 전국적인 스타로 떠올랐고 보수적 논객들이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5년 전까지 일부 기독교신자들을 제외하고는 알지 못했던 '비지 테일스'라는 성경공부용 만화책이 월마트에서 팔기 시작한 이후 전국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보수적'이 아니면 발도 붙이지 못한다. 월마트가 인기절정의 백인 래퍼 에미넴의 앨범을 매장서 치워버린데 이어 최근 대중적 성인잡지인 맥심 스터프 등마저 판매금지시켰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할인매장들이 문화상품을 사실상 검열하고 있다"며 "다양한 문화를 존중하는 전통이 사라지고 대신 획일적 문화만 찍어내고 있다"는 공격이 나오고 있다. 실제 할인매장을 의식한 영화제작사나 출판사들은 폭력이나 성(性)보다는 가족적이고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작품들을 대량으로 찍어내고 있다. 공산주의 이론의 토대를 만든 마르크스는 경제적인 토대가 정신세계에 영향을 준다고 설파했다. 정신은 경제구조의 종속변수라는 지적이다.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미국사회의 요즘 모습은 그런 측면에서 묘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해준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