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는 안됩니다. 의원입법으로 시가회계 동결법안을 제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 자민당의 호리우치 미쓰오 총무회장이 일방적인 '통고'성 발언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를 압박했다. 호리우치 총무회장이 당 총재인 총리의 면전에서 시가회계 동결법안 카드를 꺼낸 이유는 '결산'이었다. 주식 채권 등을 장부가격이 아닌 현시세로 평가하는 시가회계를 종전처럼 적용할 경우 3월 결산에 돌입한 기업과 은행들의 성적표가 엉망이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경영을 잘못한 것도 아닌 데 단지 주가폭락으로 기업·은행들이 산더미 같은 평가손실을 떠안게 된 것을 어떻게 보고만 있을 수 있느냐는 걱정이 '동결'법안을 만든 것이다. 도쿄증시의 주가는 지난 1년 평균 27% 하락,7개 대형은행들이 안게 된 평가손실은 5조4천억엔에 이른다. 기업은 3조6천억엔의 평가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본업도 아닌 자산운용에서 9조엔 규모의 손실이 발생하면 아무리 장사수완이 뛰어난 기업·은행도 적자를 면치 못하니 시가회계 적용을 미루자는 논리다. 동결법안은 국회에 제출하기로 당 방침이 굳어졌다. 고이즈미 총리는 '정석이 아닌 묘수'라며 노 사인을 보냈지만,지지의원들 어깨엔 힘이 잔뜩 들어갔다. 아소 타로 정조회장은 "정부가 뭐라 해도 우리는 할 수 있다"며 각오를 다졌다. 그러나 일본 언론의 표정에는 그림자가 배어 있다. 국제기준인 시가회계의 전면 실시가 2년 밖에 안된 상황에서 이를 손바닥 뒤집듯 동결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안그래도 기업회계의 투명성에 대한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이 적지 않은 판에 의원들의 기업사랑은 외국투자자들의 이탈을 자극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도쿄증시는 간판기업인 소니와 오릭스가 회계부정 루머에 휘말리며 작년 가을 주가 대폭락의 홍역을 치렀다. 일본기업 내부의 구시대적 관행과 각종 배타적 규제에 불만을 가져온 구미 전문가들은 회계시스템에 대해서도 의혹의 시선을 떼지 않고 있다. 자민당 의원들의 묘수에 국제금융계가 어떤 평가를 내릴지 주목되고 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