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소련 해체 후 지금까지 10년 간의 러시아-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관계는 갈등과 대립, 화해를 거듭한 애증의 역사로 규정할 수 있다. 소련을 무너뜨린 보리스 옐친 전(前) 러시아 대통령 시절 러시아와 나토는 밀월관계를 유지했으나 1999년 나토의 유고 공습때는 극한 대립 국면으로 빠져드는 등 기복을 반복했다. 러시아는 1991년 나토에 대항한 군사 동맹체인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해체한 뒤 나토를 더이상 우려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1994년에는 러-나토 우호 조약이 체결됐으나 양측 관계에는 아직 어떤 확신도 주지 못했다. 당시 나토는 유럽 평화를 위해 옛 소련 공화국들과의 관계 개선에 공을 들였다. 그러나 같은해 나토가 동구권 확장을 꾀하며 양측 관계는 긴장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러시아는 나토가 아직 냉전 논리를 버리지 못하고 러시아를 고립시키려 한다고 강력 반발했다. 하비에르 솔라나 당시 나토 사무총장은 이에 따라 러시아와 관계 복원을 위한 '러-나토 기본법' 협상을 시작해 3년 뒤인 1997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최종 사인하는 성과를 일궈냈다. 나토에 대한 러시아 발언권 확대를 보장한 이 기본법은 실제로 옐친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한 것에 불과했으나 1998년 나토 훈련에 러시아군이 처음으로 참가하는 긍정적 결과를 낳기도 했다. 러시아는 또 나토 평화유지군 일원으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분쟁 지역에 파견돼 중재 역할을 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당시 1천350명 규모의 장갑차 부대를 파병했다. 그러나 1999년 나토가 유고 공습에 나서며 양측 관계는 또다시 얼어붙었다. 옐친은 나토 공습 이틀 뒤인 같은해 3월 26일 모스크바 주재 나토 대표를 추방하고 모든 군사 교류 계획을 취소했다. 이후 2000년 12월 15일 추방된 나토 대표가 모스크바에 복귀하며 양측 관계도 다시 회복되는 양상을 보였으나 옛 소련 공화국인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등 발트해 연안 3국이 나토 가입 방침을 천명하고 나서며 다시 팽팽한 긴장 관계로 접어들었다. 러-나토 관계는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9.11 미국 테러' 직후 미국 주도의 대(對) 테러 전쟁에 전폭적 지지를 보내며 급격한 전환점을 맞았다. 러-미 양국의 급속한 관계 개선으로 정체성 위기에 빠진 나토는 급기야 같은해 12월 러시아를 동등한 입장의 동반자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고, 이같은 방침은 지난 3월 14일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러-나토 외무장관 회담에서 최종 승인됐다. 이어 28일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서 열린 러-나토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에 나토회원국과 동등한 발언권을 주는 새 `러-나토 위원회' 설치안이 최종 조임됨에 따라 양측 관계는 신기원을 맞게 됐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이봉준 특파원 joon@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