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 소지와 기본 인권 침해 논란 속에 오랜기간 미뤄져 왔던 일본의 본격적인 유사법제 법안이 '일괄 타결' 형태로 17일 국회에 상정된다. ◆유사법제 유사법제란 일본이 직접 무력 공격을 받는 등 유사 사태가 발생했을 때 자위대의 신속하고 원활한 출동 및 작전 등을 가능토록 하기 위해 필요한 각종 법률과 제도의 정비를 폭넓게 지칭하는 말이다. 일본 정부는 1977년부터 방위청 등을 중심으로 입법화는 하지 않겠다는 전제 하에 유사 법제 문제를 조심스럽게 검토해 왔다. 그러나 지난 98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과 99년 8월의 주변 유사 사태법(일본 본토가 아닌 주변 지역에서 유사 사태가 발생했을 경우를 상정한 법) 등 신 미일 방위 협력 지침(일명 가이드라인) 관련법 시행을 계기로 본격적인 입법화 추진으로 돌아섰다. 실질적으로 유사법제는 자위대의 효율적인 전투 수행과 관련한 진지 구축, 사유지 사용, 물자 수송, 공항 징발 등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일본내 반전 시민 단체 등은 가이드라인 관련법과 함께 이같은 유사 법제화를 `전시 동원법' 제정과 마찬가지라고 비난해 왔다. ◆유사 법제 관련 법안 내용 '무력 공격 사태 법안'(신규 입법), '안전 보장 회의 설치법 개정안', 자위대개정법안 등 3개 법안이 일괄 제출된다. 이들 법안에서 주목되는 대목은 `무력 공격 사태'의 개념을 직접 공격을 받았을 때 뿐만 아니라 `사태가 긴박해져 무력 공격이 예상될 경우'로까지 그 범위를 확대한 점이다. 무력 공격 사태의 범위가 지나치게 애매모호하게 확대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부분이다. 해석 여하에 따라서는 자위대의 방위출동(병력출동) 대상이 크게 넓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총리의 권한이 대폭 확대된 것도 특징이다. 구체적으로는 유사 사태가 발생할 경우 총리는 안전 보장 회의 자문에 따라 무력 공격 사태의 인정 여부 등 대응 기본 방침을 결정하며 그 후 자위대가 전투에 착수하기 위한 방위출동이 발령된다. 이 과정에서 총리는 지방 자치 단체에 항만 사용, 물자 징발 등을 지시하며, 해당 지자체가 이를 거부할 경우 직접 집행까지 할 수 있도록 그 권한이 확대됐다. 대통령제하의 권한을 방불케 하는 대목이다. 또 유사시의 국민 협력 의무 조항을 명기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처벌도 가능토록 규정했다. 이들 법안 추진에 반대하는 `평화 세력'이 국민의 기본 인권 침해라고 반발하는 부분이다. ◆추진 배경 유사법제는 일본내 우파 세력이 그동안 강력히 주장해온 '숙원' 사항이었으나 현행 `평화 헌법'의 굴레와 자민당 온건파의 신중론, 야당 일각의 반발, `평화 시민단체' 등의 여론 때문에 추진이 `지연'돼 왔다. 물론 일각의 비유대로 `전시 대비 입법'이라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한 일본의 본격적인 유사 법제 추진을 둘러싼 주변국의 반발도 의식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일본의 역대 우파 내각이 `염원'해 왔던 유사법제가 지난 해 출범 당시부터 매파 정권으로 우려를 자아냈었던 고이즈미 정권 하에서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우파 세력의 유사법제 추진론이 결정적인 힘을 얻게 된 것은 지난 해 9월의 미국 동시 다발 테러 참사와 지난 해 말의 북한 공작선 추정 괴선박 출현 사건이었다. 이들 사건을 계기로 고이즈미 정권은 유사법제 강행쪽으로 급선회했고, 한 걸음더 나아가 자위대법 개정안 등을 포함시킨 3개 관련 법안의 국회 일괄 상정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 과정에서 테러 등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지난 99년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내각때 제정된 `주변 사태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주장이 확산됐다. ◆ 향후 전망 고이즈미 정권은 이들 유사 법제 관련 법안을 이번 정기 국회에서 반드시 관철시키겠다는 태세다. 이를 위해 국회 회기가 2개월 정도 밖에 남지 않은 점을 감안, 필요할 경우 회기를 연장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자민당내의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 전 간사장 등 하시모토(橋本)파는 유사 법제와 회기 연장에 신중론을 견지하고 있다. 특히 노나카 전 간사장의 경우 "지금 세상에서 일본이 직접 무력 공격을 받을 사태가 과연 발생하겠느냐"고 신중론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하시모토파는 유사법제 문제를 위해 회기를 연장하는 것은 모양이 좋지 않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유사 법제 문제를 둘러싸고 고이즈미 진영과 자민당 최대 파벌인 하시모토파 간에 지난 해의 `테러 대책 지원법'에 이은 힘겨루기가 벌어질 공산이 크다. 그러나 연립 여당 파트너인 공명당이 유사법제 추진쪽에 가담하는 등 현재의 일본 정계 구도를 감안할 때 이변이 없는 한 이번 정기 국회에서 전후 최초이자 우파세력의 숙원 사항이었던 유사법제는 통과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도쿄=연합뉴스) 김용수특파원 ys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