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많은 국제조약을 거부하거나 무시함으로써 국제법 체계를 굳게 구축하려는 다른 나라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군축 및 인권 전문가들이 유엔에 제출한 한 보고서를 인용해 4일 보도했다. 이 보고서는 미국이 핵실험 및 핵확산 금지, 지뢰매설금지 협정에서 기후변화협약 또는 여성 및 아동의 권리 보호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국제협약을 미국이 받아들이는 것을 기피해 왔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민간단체인 '에너지환경연구소'와 '핵정책에 관한 법률가위원회'가 작성한 '힘의 통치와 법의 통치'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미국이 때로는 우방들과 함께국제법을 위반해 왔다고 비판했다. 이 보고서는 그 예로서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을 들었다. 지하 핵실험을 포함해 일체의 핵실험을 금지하는 이 조약은 지난 1996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됐으며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정부도 서명했다. 그러나 미국 상원은 1999년 비준을 거부했으며 이 과정에서 미국 정부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이 보고서는 비판했다. 모두 165개국이 서명한 이 조약이 발효되려면 미국을 비롯한 원자로시설 보유 44개국 모두의 비준이 필요하다. 게다가 미국은 현재 캘리포니아주 리버모어에 레이저 핵융합 연구소를 건설중에 있는데 이는 CTBT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이 보고서는 지적했다. 또다른 하나는 상설 국제형사재판소(ICC) 관련 조약이다. 지난 1998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성안된 이 조약은 60개국의 비준을 얻어야 하는데, 현재 56개국이 서명했으며 오는 7월이면 발효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대통령 정부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서명한 이 조약의 비준을 반대할 뿐만 아니라, 서명국 명단에서 아예 빠지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이 보고서는 밝혔다. 부시 정부는 이 조약이 미국이 전세계적으로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에 장애가 될 것으로 우려해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그밖에도 지난해 교토 기후협약의 거부 및 탄도탄요격미사일 협정의 파기를 선언했었다. 유엔의 군축담당 사무차장인 자얀다 다나팔라는 "9·11 테러 이후 기본권이 위축됐다고 인권단체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군축 조약들도 테러와의 전쟁 때문에 뒷전으로 처졌다"고 경고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뉴욕=연합뉴스) 강일중 특파원 kangfa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