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대문호 빅토르 위고 탄생 200주년을 맞아 26일 프랑스 국내는 물론 벨기에,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 대대적인 축하 행사가 열렸다. 위고는 1802년 프랑스 동부 브장송에서 태어나 레미제라블, 노트르담의 꼽추 등 수많은 문학작품을 남겼으며 자유, 정의, 인권,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을 투쟁한 인물로 걸출한 정치인이자 혁명가로 꼽힌다. 프랑스 신문, 방송 등 언론들은 위고를 기리기 위해 국내와 불어문화권인 벨기에, 아프리카는 물론 아시아, 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기념 행사가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라디오 프랑스는 "위고가 태어난지 벌써 200년이 됐다"며 "그는 샤토브리앙이 아니면 아무 것도 되지 않겠다고 말했으나 후세에 작가, 화가, 정치인, 아버지, 할아버지, 연인, 자유의 선구자로 남음으로써 훨씬 큰 인물이 됐다"고 기렸다. 르 피가로 등 신문들은 위고 특집판을 내고 그의 일생과 작품을 조명했으며 올 초부터 연말까지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전시회, 공연, 독서회 등 각종 기념 행사를 소개했다. 국내 100여개의 도시에는 위고 작품에서 따온 경구나 그의 명언을 실은 포스터가 내걸렸으며 불어 국제방송인 TV5는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에 레미제라블 등 위고 작품 영화를 방영했다. 이에 앞서 25일 그의 출생지인 브장송에서 리오넬 조스팽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전야제가 열렸으며 상원은 26일 그가 20년의 망명 생활을 보낸 채널 제도를 방문했다. 이같은 위고 기념 행사는 프랑스가 지난해 문화, 교육, 예술, 대학, 언론 등 각 분야 저명인사들로 구성한 국가위원회를 중심으로 올 한해 동안 계속된다. 위고는 작가, 시인으로서 다양한 장르의 문학작품을 남겼을 뿐 아니라 자유, 평등, 박애를 주창한 논객이자 정치인으로 그의 동 시대뿐 아니라 오늘날까지 사상과문화에 깊은 정신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대양과 같은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위고는 1851년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에 항거하다 브뤼셀로 피신한 뒤 도버해협 도서지방에서 오랜 망명생활을 했으며 1870년 파리로 돌아온 뒤에는 빈민구제, 언론자유, 사형제폐지, 의무교육 등의 인권, 민주주의 옹호 운동을 폈다. 레미제라블 등 주옥같은 작품들이 그의 망명 기간에 집필돼 유럽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문학적 양심인 동시에 혁명의 영웅이었던 위고는 서거 후 수백만 군중의 애도 속에 공화국의 성전으로 프랑스를 빛낸 위인들의 유해가 모셔진 팡테옹에 안장됐다. 파리 위고 하우스의 학예사인 다니엘 몰리나리는 "그의 이력은 경이적이다"며 그는 끊임없이 작품을 썼으며 엄청난 창작력을 지니고 있었고 동시대의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파리=연합뉴스) 현경숙특파원 k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