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떠나가는 사람들 ]]]

국내 이상으로 해외파견자의 생활이 어려워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베이징
(북경)의 한국인들 사이에선 문봉주 주중대사관정무공사와 유학생 권혜수양
(24)의 얘기가 화제다.

문공사는 지난 4일 베이징 주재 상사주재원과 대사관직원 유학생 등이
모인 자리에서 "IMF시대에 해외생활을 하느라 고생이 많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우리의 처지를 파악하지 못한채 분수에 넘친 생활을 한 것이 오늘의
위기상황을 몰고 온 가장 큰 요인"이라고 나름대로 진단하고 "그동안 일부
한국인들이 소득이 낮다는 이유로 중국인들을 얕보고 교만하게 처신해온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문공사의 발언이 계속되는 동안 참석자들은 고개를 들지못했다.

그는 천천히 얘기를 이어갔다.

문공사는 "작년 12월쯤부터 우리 주위에서 사라지는 사람들이 많다.

사정이 워낙 딱해서인지 인사도 없이 귀국한다"고 말하면서 눈가에 이슬이
맺혔고 일부 상사주재원들은 흐느끼기까지 했다.

권혜수양의 경우는 해외유학생의 어려움과 제때에 학비를 송금하지 못한
부모의 심정을 엿볼 수 있는 사례다.

권양의 어머니(서울거주)는 지난 7일 베이징한국유학생회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딸의 소재를 물었다.

권양의 어머니는 "혜수가 돈이 바닥나 유학생활을 계속하기 어렵다"는
국제전화를 걸어왔는데도 국내 사정이 워낙 어려워 2개월여동안 미루다가
최근 생활비를 보냈으나 기숙사에서 나갔고 보낸 돈도 찾아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권양의 어머니는 울먹이면서 "귀국할 돈을 기다리는 중에 치안이 불안한
중국에서 혹시 무슨 일이라도 당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면서 베이징유학생
회가 나서 소재를 파악해줄 것을 요청했다.

윤여백 베이징유학생회장은 "권양이 무사할 것으로 믿고 있다"며 "그러나
4천여명의 베이징 소재 한국유학생 부모들의 심정을 보는 것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이런 "IMF한파"는 대사관에도 예외는 아니다.

주중대사관의 한 서기관은 "지난해 12월 받은 월급여를 달러로 환산하니
중국인 직원의 급여와 비슷한 5백달러 수준이었다"고 한탄했다.

점심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대사관직원들도 늘어간다.

하동만 주중대사관 재경관은 "주재국정부 관계자들과 만나는 등의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싸가지고 온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운다"며 "지출을 줄이는
것 못지 않게 도시락을 먹으면서 위기극복의 마음을 가다듬는 기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경비절감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일부 상사주재원은 중국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거주가 가능한 중국인 밀집지역으로 옮기는 사례까지 있다.

한 중소기업의 베이징사무소장 L씨는 지난해 12월 하순 중국당국이
외국인에 대해서 엄격히 통제하고 있는 중국인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는 "중국인거주지역에서 허가없이 살다가 들키면 벌금을 물고 강제
퇴거조치를 당하는 것을 알지만 그동안의 중국시장 개척노력이 허사가 되지
않기위해 이렇게 해서라도 사무실을 유지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중국한국상회의 한 간부는 "개인소득 수준이 월등히 낮은 중국측 파트너로
부터 위로를 받을 땐 비애감을 느낀다"면서 "IMF시대 우리경제 회생의
돌파구인 중국시장이라 물러설 수도 없고..."라며 말끝을 흐린다.

<베이징=김영근 특파원>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