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지출 확대와 대규모 감세를 통해 경기를 부양시키겠다는 영국 정부의 계획을 국제통화기구(IMF)가 강하게 비판했다. 물가가 치솟는 상황에서 이같은 조치가 오히려 소비 심리를 자극해 인플레이션을 악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IMF는 27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영국의 높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고려할 때 이 시점에서는 선별적이지 않은 대규모 재정지출을 권하지 않는다"며 재고를 촉구했다. IMF는 "재정정책이 통화정책과 상반된 목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영국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리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물가를 잡기 위해 통화 긴축에 나선 중앙은행의 방향과 충돌한다는 얘기다. 영국 중앙은행은 지난 22일 물가 대응을 위해 두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렸다.

IMF의 이례적인 공개 비판은 영국발(發) 금융쇼크가 발생한 이후 나왔다. 지난 23일 영국 재무부는 50년 만에 최대 규모인 450억파운드(약 69조원) 규모의 감세 정책을 발표했다.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가계와 기업을 위해 향후 6개월간 600억파운드(약 92조원)를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필요한 재원은 국채 발행을 통해 마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영국 정부의 이런 조치가 재정적자를 악화하고 인플레이션을 가중시킬 것이란 우려가 퍼졌다. 이에 달러 대비 파운드 가치는 지난 26일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국채 발행 확대에 따른 가격 하락 우려에 투매 현상도 빚어졌다. 영국의 5년 만기 국채 금리는 재정 취약국인 이탈리아와 그리스 보다 높아졌다.

미국에서도 영국 경기 대책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브라이언 디즈 미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27일 "통화 긴축 시기에 해당 정책을 실시하는 것은 통화 당국이 더욱 긴축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 한다"면서 "재정 건전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영국 재무부와 중앙은행이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면서다. 이 영향으로 27일 파운드화 가치는 1.07달러로 소폭 상승했다. 하지만 지난 23일 발표 당시 보다 4% 하락한 상태다. 한편 HSBC 등 6개 은행은 금리 변동성을 감안해 이날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일시 중단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