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의 복합위기에 대비해 건전성을 강화하라는 금융당국의 주문에도 4대 금융지주사가 올해 2분기에 예상보다 적은 충당금을 적립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급격한 금리 상승에 따른 대출 부실 위험에 대비하려면 금융회사들이 더 공격적인 자본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부족한 추가 충당금 적립률

서영수 키움증권 이사는 25일 ‘은행의 위기 대응 능력, 신뢰할 수 있을까’란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등 국내 4대 은행의 총여신 대비 충당금 적립률은 평균 0.48%로 전 분기(0.44%) 대비 0.04%포인트 높아지는 데 그쳤다. 지난해 말과 비교해도 0.05%포인트 상승한 수준이다.
대출 부실 우려에도…충당금 덜 쌓은 금융지주
서 이사는 이들 은행이 금융위기에 충분히 대응하려면 올 2분기에 총여신 대비 충당금 적립률을 최소 1%포인트는 끌어올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은행들이 금융환경 변화에 맞춰 위험조정계수를 수정하지 않은 것 같다”며 “대출금리 상승세와 부동산 경매 가격 및 분양률 하락 현상 등을 반영해 위험조정계수를 수정했더라면 충당금이 큰 폭으로 늘었을 것”이라고 했다.

점점 커지는 대출 부실 우려

더 많은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대출 부실 위험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현재 4대 은행의 변동금리 대출 비중은 80% 수준에 달한다. 그 덕분에 지난 2분기 4대 금융지주의 이자 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2.5% 증가했다.

하지만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일단락되면 이들 금융사의 순이자 마진이 줄어들고, 대출 부실 위험이 커져 대손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국내 은행들은 변동금리 대출, 이자 상환 대출, 단기 대출 비중이 높아 기준금리가 급등할 경우 채무 불이행 위험이 급격히 커질 것이라는 얘기다.

지금의 금리 상승 속도를 고려하면 기존 차주들의 평균 대출 금리는 올해 하반기 말께 연 4%에 근접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되면 이자 부담이 평균 50% 이상 늘어 채무 불이행 급증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채무 불이행 위험이 높은 차주로는 2030세대 ‘영끌족’과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한 5060세대 과다 채무자가 지목된다. 비은행을 이용해 상가와 토지 등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한 은행 고객도 적지 않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비은행 차주의 절반가량이 은행 고객으로 사업자 명의를 이용해 단기 변동금리 대출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급증하는 위험가중자산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은 대출금리 상승뿐 아니라 금융사 간 예금금리 경쟁을 촉발해 금융사의 유동성 위험을 높이는 계기로 작용해왔다고 서 이사는 강조했다. 2008년 금융위기가 대표적이다. 당시 은행의 과도한 은행채 발행으로 국고채 대비 은행채 스프레드가 급등하면서 위기가 촉발됐다.

서 이사는 최근 금융권에서도 이런 위험이 감지된다고 진단했다. 그는 “국내 대형 은행은 경쟁적으로 정기예금과 은행채 발행을 늘리고 있다”며 “이는 은행채 스프레드 및 예금 금리 급등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 결과 비은행과 여신 전문 금융회사들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는 기업 자금 경색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4대 금융지주의 자본비율이 하락했다는 점도 주목했다. 4대 금융지주의 올해 2분기 평균 자본비율은 12.49%로 전년 말 대비 0.45%포인트 하락했다. 올 들어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한도 대출, 파생상품자산 등 위험가중자산이 18조3000억원 증가한 영향이다.

서 이사는 “2008년엔 유동성 위기에 그쳤는데도 금융사 실적이 급격히 악화했다”며 “이번에는 유동성 문제와 부채 문제가 결합한 상황이어서 문제가 조기에 수습되지 않으면 실적 악화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